본문 바로가기

글에 담긴 세상84

[이소영의 ‘우리지역 우리식물’] 완도 호랑가시나무와 어떤 과도기 내게는 식물 책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 지난달 책장을 정리하다 우리나라 1세대 식물학자인 장형두 선생의 책 ‘학생 조선 식물 도보’(1948년)를 발견했다. 장형두 선생은 해방 이후 펴낸 이 책 속 모든 글을 우리말로 썼다. 식물은 묻사리, 학명을 갈 이름으로. 그렇게 일본 말을 완전히 배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마지막에는 ‘우리나라 국명과 일본명 맞대보기’장이 있다. 선생은 이 장 꼭지에 이렇게 일러두었다. ‘일본명을 여기에 쓴 것은 아직까지 일본 말 참고서가 많이 쓰이고 있는데 비추어 똑바른 우리말 이름을 찾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려는 과도기적 조치다.’ 나는 ‘과도기적 조치’라는 말을 되뇌었다. 왜냐면 나 역시 내가 그리는 그림이 ‘식물 세밀화’라는 용어로 알맞지 않지만 선생의 말씀처럼 과도기적 .. 2022. 10. 2.
[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이탈리아 사람을 화나게 하는 방법 ‘이탈리아 사람을 화나게 하는 방법.’ 이런 제목의 인터넷 ‘짤’이 돈다. 내용은 이렇다. “1. 파인애플을 올린 피자를 이탈리아인에게 내밀자, 그가 분노하는 모습.” “2. 아이스 아메리카노 앞에서 이탈리아인이 화내는 모습. 또 다른 건 한국의 한 카페 메뉴인데 ‘Non Coffee’라는 항목의 메뉴에 주스류와 함께 아메리카노를 써 놓은 사진.” 이 사진을 본 사람들 반응은 여러 갈래다. 일단은 재미있게 보았다고 느낀다. 음, 이탈리아인은 이런 메뉴를 싫어하나봐. 하나 알게 되었어. 흥미로운걸. 이 정도의 반응이 제일 많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가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많다. 교조적인 게 아니냐, 음식이 다른 나라에 가면 변할 수도 있지 화를 내는 건 뭐냐. 나아가서, 귤이 회수를 건너 .. 2022. 9. 24.
[이소영의 우리지역 우리식물] 내장산, 진노랑상사화를 그리는 시간 사람들은 종종 내게 그림 그리는 데 가장 오래 걸린 식물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리기로 마음먹고 완성하기까지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던 식물은 진노랑상사화다. 2009년 봄 처음 조사를 시작해 2018년 봄에 완성했으니 다 그리는 데에 9년 여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생각해 보면 식물을 그리기 위해 책상에 앉아 있던 시간보다는 책상에 앉기까지, 그릴 식물 데이터를 모으는 데에 드는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뿌리로부터 가지와 줄기가 나고 잎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다 익은 열매 속 씨앗이 익는 식물의 삶을 모두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9년 내내 진노랑상사화만 관찰하고 그리고 있던 것은 아니다. 더 급하게 작업해야 했던(마감이 급했던) 식물을 그리느라 진노랑상사화의 관찰.. 2022. 8. 7.
[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광주 중국집의 김치 한국의 오래된 도시에는 유서 깊은 식당들이 있다. 그중에서 중국집의 존재도 뚜렷하다. 화교는 임오군란 이후 조선반도에 들어와 살다가 1949년 중국에 인민공화국이 생기고 국교가 단절되면서 생겨난 구체적인 디아스포라다. 화교란 말 자체가 이주한 자를 뜻하는 ‘교’(僑)라는 한자를 쓴다. 오도가도 못하게 된 화교의 주업이 포목점과 주물, 이발, 채소 재배, 그리고 우리들의 기억에 선명한 중국집이다. 광주는 화교세가 꽤 셌다. 호남의 목포·군산·전주·익산과 함께 화교 학교가 있어서 자체적으로 기초 교육을 감당했다. 인구가 충분하지 않으면 학교를 열 수 없었다. 화교는 광주에도 많은 중국집을 열었고 시대에 따라 명멸했다. 그중에서 시내에서 아직도 영업하면서 중국집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집들이 있다. 금남로에 .. 2022. 6. 4.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