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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담긴 세상

[이소영의 우리지역 우리식물] 내장산, 진노랑상사화를 그리는 시간

by 광주일보 2022.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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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종종 내게 그림 그리는 데 가장 오래 걸린 식물이 무엇인지 묻는다. 그리기로 마음먹고 완성하기까지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던 식물은 진노랑상사화다. 2009년 봄 처음 조사를 시작해 2018년 봄에 완성했으니 다 그리는 데에 9년 여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생각해 보면 식물을 그리기 위해 책상에 앉아 있던 시간보다는 책상에 앉기까지, 그릴 식물 데이터를 모으는 데에 드는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뿌리로부터 가지와 줄기가 나고 잎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다 익은 열매 속 씨앗이 익는 식물의 삶을 모두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9년 내내 진노랑상사화만 관찰하고 그리고 있던 것은 아니다. 더 급하게 작업해야 했던(마감이 급했던) 식물을 그리느라 진노랑상사화의 관찰이 미뤄졌을 뿐이다.

진노랑상사화는 수선화과 상사화속의 식물이다. 상사화는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한다는 연유로 붙여진 이름이다. 많은 식물이 하나의 줄기에서 잎과 꽃이 같이 나지만, 이들은 초봄에 잎을 내고 이 잎이 져 사라지면 그 후에야 꽃대가 길게 올라와 꽃을 피운다. 이들은 종간 교잡도 쉽게 일어난다. 상사화속 중 씨앗을 맺지 못하는 자연교잡종은 인경을 통해 무성생식으로 번식해 살아가는 독특한 성질을 지녔다. 게다가 워낙 꽃색이 다양하고 아름다워 관상식물로도 많이 식재된다. 어제 작업실 근처 국립수목원에 가보니 이미 상사화속 중 대표종인 상사화의 분홍색 꽃이 꽃밭을 이루기 시작했다.

내가 오랜 시간 관찰해 그린 진노랑상사화도 이제 곧 꽃을 피울 것이다. 7월에서 8월 사이 이들은 긴 꽃줄기에서 네다섯 개의 꽃을 피운다. 식물명처럼 꽃은 진노란색이다.

나는 이들을 관찰하느라 자생지인 내장산을 자주도 찾았다. 잎을 피우는 봄을 지나 꽃봉오리를 내고 꽃이 만개하는 시기, 그리고 하나둘 지는 꽃과 피어 있는 꽃이 꽃대에 함께 하는 시기에도. 진노랑상사화 군락지를 찾을 때마다 오르던 숲길, 늘 들르던 식당과 마트가 익숙해질 때 즈음 나는 더 이상 그곳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림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2009년 처음 관찰을 시작할 때엔 늘 무거운 DSLR 카메라를 둘러매고 다녔는데, 2018년 그림을 완성할 즈음에는 더 이상 이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될 정도로 핸드폰 카메라가 고화질이 되었다. 숲에서 상사화 꽃이 아홉 번 피고 지고를 반복하는 시간은 도시에서 휴대폰 카메라의 화질 변화로 비유된다. 그렇게 완성된 진노랑상사화 그림은 나의 첫 단행본 ‘식물 산책’의 표지로 남았다.

나는 또 다른 상사화와의 조우를 준비 중이다. 진노랑상사화를 그릴 때부터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일곱 종의 상사화속 식물을 모두 그려 한국의 상사화속 시리즈를 완성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일곱 종의 상사화 중 다섯 종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한국 특산 식물이기에 우리나라의 연구자가 그림이나 표본, 글로 꼭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진노랑상사화 한 종을 그리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지만.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상사화속 식물 중에는 진노랑상사화 외에도 지금 한창 피어나기 시작한 대표종 상사화 그리고 위도상사화와 붉노랑상사화, 백양꽃 그리고 제주에서 자생하는 제주상사화와 중국에서 온 석산이 있다. 이중 진노랑상사화와 붉노랑상사화, 위도상사화와 백양꽃은 우리나라에서도 전라북도를 중심으로 분포하는 귀한 식물이다. 게다가 제주에서만 서식하는 연주황색 꽃의 제주상사화는 백양꽃과 진노랑상사화의 자연교잡종으로 연구되었다. 다시 말해 제주상사화가 제주도에서만 분포하는 것을 보아 제주도는 과거 한반도에서 분리되었고, 전라도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나는 진노랑상사화 다음 대상으로 백양꽃을 그릴 예정이다. 1930년 전남 장성 백양사 근처에서 조선총독부 소속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 의해 처음 채집되어 백양꽃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식물. 앞으로 얼마나 또 백양꽃 자생지를 자주 찾아야 할지, 과연 우리나라 자생 상사화속 식물 기록이 내 생에 완성될지는 모르지만, 진노랑상사화를 그릴 때처럼 부지런히 산에 오르고 식물과 자주 만나다 보면 기록은 어느새 완성되지 않을까 싶을 뿐이다. <식물세밀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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