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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담긴 세상

[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나물의 봄, 봄의 나물

by 광주일보 2022.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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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도 아닌데 나물 장수들이 진을 치고 있다. 5월 초, 정선시장의 풍경이다. 정선은 대표적인 인구 노령화 지역이다. 인구가 줄고 이동이 줄면 기차역도 없어진다. 그래도 정선의 기차역이 건재한 것은 장날이 유명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특히 오월 봄날의 장날은 나물 장날이다. 전국 어디든 나물이 지천인 계절인데, 강원도는 늘 주목받는다. 산지가 유독 많아서다. ‘나물=들과 산’이라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이 있다. 이제는 많은 나물들을 채취에 그치지 않고 재배한다. 그래도 강원도의 산지는 산에서 뜯어 오는 나물을 많이 볼 수 있다. 딱 이맘때다.

시장 골목에 좌판이 아직도 살아 있어서 반갑다. 전국의 시장을 다니면 좌판은 거의 없어졌다. 손님이 없어서 정식 점포도 노는데, 좌판이 있을 리 없다. 그래도 이 정선 땅 시장에는 좌판이 흥하고, 장날이라도 되면 시장 밖까지 좌판으로 넘쳐난다. 팔고 살 것이 있어야 하는데, 나물만큼 좋은 게 또 있으랴. 나물은 계절 상품이라 나오는 철이 빤하다. 손님들도 그때를 챙겨서 시장에 나온다. 사람의 몸이 우주의 순환에 따라 움직이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그래도 봄이면 나물을 바라는 건, 몸의 묘한 요구 때문일 것이다.

눈개승마와 개두릅이 손님을 기다린다. 봄나물의 왕이다. 생나물로는 이 철이 지나면 먹을 수 없다. 비싸지만 금세 팔린다. 날로도 먹을 수 있지만 데치거나 장아찌로 먹는다. 데쳐 먹는 걸 추천한다. 초장에 찍는 게 보통인데 데쳐서 된장에 버무려 먹는 게 더 맛있다고 생각한다. 명이가 많이 보이는 것도 재미있다. 옛날엔 산지서나 알음알음 먹던 나물인데, 이제는 유명해져서 시장에 나오는 양도 많아졌다. 전국의 깊은 산에서는 명이를 기르거나 따는 게 큰일이 되었다. 사람들이 알아보고, 비싸게 사주는 까닭이다. 장아찌로 담그거나 쌈으로 먹으면 된다. 특히 생쌈이 좋다. 두어 장 손에 놓고 밥과 된장을 발라 쌈을 먹는다. 알싸한 양이, 조선의 마늘다운 맛이 입안에 은근하게 퍼진다. 우리가 먹는 일반 마늘은 산마늘보다 훨씬 나중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늘은 지중해 동부 지역이 원산지로 실크로드를 타고 한국에 온 것으로 보인다. 명이는 산마늘이라고 부르는 한반도 토종의 마늘인 셈이다.

이 봄에 볼 수 있는 별난 나물도 많이 나왔다. 참나물은 아주 흔한 사철 나물에 가깝게 되었는데, 요즘 자연산이 종종 보인다. 대부분 잘 모르는 오가피 자연산 나물도 있다. 갓 꺾어온 생고사리도 보인다. “집에서 내가 말린 것”이라는 광고(?)가 붙어 있는 말린 고사리도 있다. 생고사리는 데쳐서 말려 시장에 나온다. 녹색 고사리가 말리면 검게 변한다. 정선은 곤드레나물로 유명한 곳이다. 구황음식으로 먹던 곤드레나물밥이 인기를 끌면서 곤드레로 만드는 초콜릿, 케이크, 음료를 파는 제과점과 카페가 역전과 시장의 저잣거리에 있을 정도다.

이 철에 생나물을 보는 건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 보통 말린 나물을 많이 먹는데, 나물은 말리면 그 고유한 향과 색깔, 모양이 잘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 지금 먹는 나물이 그래서 식물이 가지고 있는 향을 뿜어 내는 고유한 정유(精油)랄까, 맛을 제대로 보여준다. 나물에도 제철이 있는 이유다.

나물은 인류가 구할 수 있는 최선의 음식 재료였다. 특히 삶을 수 있도록 불과 철기를 쓰면서 크게 쓰임새가 넓어졌다. 곡물을 길러서 집단생활을 하고, 칼로리를 얻는 일은 늘 곤궁했다. 원하는 양보다 공급이 부족했다. 산과 들이 있으면 그 부족분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철기로 만든 솥은 삶을 수 있으므로 나물의 독성을 없애고, 식감을 좋게 하며 보존성을 높여 주었다.

특히 산지와 구릉이 많은 한국인에게 나물의 효용은 남달랐다. 나물 요리가 발달한 것도 그런 까닭이며, 온갖 맛난 재료가 넘쳐나는 시대에도 나물 찾는 이들은 줄지 않는다. 한·중·일 삼국이 모두 오랫동안 나물을 먹어왔다. 그러나 나물이 이처럼 다양하게 살아남은 나라는 한국뿐이다. 다른 두 나라도 나물을 여전히 먹지만 아주 제한적이다. 나물이 ‘산업’의 수준으로 생산되고 팔리는 나라는 우리다. 아시다시피 고기가 없는가, 재배한 채소가 없는가. 굳이 나물을 먹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도 왜 우리는 나물을 이토록 즐기고, 집착하는지 놀라울 뿐이다. 배고픈 시절의 기억이라고만 분석할 수도 없다.

이웃 나라들도 같은 이유로 나물을 먹고 저장했지만 이제는 아주 적게 먹는다. 산지의 분포나 음식 문화가 유사한 일본의 예를 들면, 나물을 오래 먹어 왔는데 이제는 ‘산사이’(山菜)라고 하여, 특별한 미각의 일종으로 소수 사람들이 즐길 뿐이다. 한식이 일본에서 뜨는데, 나물도 한몫한다. 아예 한국식 나물을 ‘나무루’(나물의 일본식 발음)하고 부른다. 흥미로운 건, 어떤 음식이든 참기름과 통깨를 뿌리면 ‘나무루’라고 호칭한다. 예를 들어 계란에 참기름과 통깨를 뿌렸다? 그러면 계란 나물이라고 한다. 여담인데, 이국의 음식 문화가 어떤 시각으로 대중화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작 우리 나물의 상당수는 들기름을 뿌린다는 걸 그들이 알 턱이 없고.

다시 봄이다. 나물 장을 보러 가자.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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