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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담긴 세상84

[서효인의 소설처럼] 구도의 애도 - 유영은 외 ‘구도가 만든 숲’ 최근 출간된 신예 작가 단편 앤솔러지의 표제작이자 신인 작가 유영은의 신작 단편인 ‘구도가 만든 숲’은 꽤 의뭉스러우나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인 ‘구도’를 바라보는 화자 ‘나’의 진술로 이루어져 있다. 지방에 위치한 J시에 사는 구도는 몇 년 전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냉면집의 주인이 작년에 죽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고는 그 소식을 알려준 옛 아르바이트 동료인 나를 무작정 찾아온다. 나는 죽은 사장님의 조카로 그 가게에서 계속 일하고 있다. 일상은 전과 같다. 여름이면 매일을 허둥지둥 보내지만, 성수기가 지나고 겨울이 오면 “여분의 시간에 목이 졸리는 것”을 느끼며 그저 버틸 뿐이다. 그런 나에게 구도의 방문은 뜻밖일 수밖에 없다. 그는 단기 아르바이트 노동자에 불과했고, 이모의 조카라거나 친인척이 아닌데다 .. 2022. 11. 5.
기쁨을 주는 정화(淨化)- 황성호 신부, 광주가톨릭 사회복지회 부국장 죄를 지어놓고도 절대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며 도리어 적반하장으로 공격하려 달려드는 경우들을 종종 본다. 화를 내며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는 이들의 목적은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함이다. 그리고 폭력과도 같은 강압적인 태도도 보이는데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하고 본질을 흐리려는 목적이다. 이런 공격적인 폭력은 그 죄를 거짓으로 덧칠하여 훌륭한 가면으로 작용하게 된다. 탐욕과 사악함으로 탄생한 죄는 감추어야 하고, 반대편에 서 있는 이들에게 들키지 말아야 하는 추악한 자기 속내이기 때문이다. 결국 거짓과 꼼수 그리고 고착되어 굳어 버린 얼굴과 태도는 상대를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없는, 죄가 있는 자신보다 더 못한 존재로 치부해 버린다. 이러한 모습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이들의 어리석고 한심스러운 모습이다. 이런 .. 2022. 10. 23.
[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육짬뽕이 늘어난 이유 요리사들은 새벽에 장을 보러 많이 다닌다. 아무래도 생선장을 중시한다. 생선은 좋은 물을 보자면 직접 가는 게 아무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요리사 생활을 하면서 어물, 생선의 위기를 크게 느낀다. 장이 점점 썰렁하고 양이 적어졌다. 한국은 1인당 수산물 소비량 세계 5위 안에 들어가는 나라다. 건강을 위해 수산물을 많이 먹으라고 국가 의료체계에서 독려하는 나라이고, 과거에는 값이 싸서, 요즘은 미식으로도 수산물을 소비한다. 수산물은 이제 제철을 만난다. 봄이 지나면 어황이 변변찮아지고, 봄은 유독 산란철이 많아서 금어기가 길다. 여름도 마땅한 주력 어종이 없다. 가을 초입에 고등어와 전어, 낙지, 굵어진 오징어를 시작으로 수산물 사정이 나아진다. 올해는 영 분위기가 안 좋다. 서울의 요리사들은 .. 2022. 10. 22.
[서효인의 ‘소설처럼’]어떤 비관 - 안녕달 『눈, 물』 어떤 상실은 운명이다. 우리는 대체로 정해진 운명을 따르되, 그 따름의 과정을 애써 잊고 산다. 죽음이 특히 그렇다. 모두가 언젠가는 죽겠지만 죽음의 공포에 질려 일상을 해칠 수는 없다. 죽음보다는 삶에 집중하는 게 현명하다. 거대한 상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애도가 전부이고, 애도의 기간이 끝나면 다시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 제대로 애도할 수 없다면, 되돌아올 삶에 죽음은 영향을 미친다. 상실의 불안이 우리를 잠식하고 지배하는 것이다. 제대로 잊기 위해서는 무결에 가까운 애도가 필요하다. 실컷 울어도 좋고, 마음껏 추억해도 좋다. 울음과 추억 속에 상실된 그것을 향해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 드러날 것이기에. 안녕달 그림책 『눈, 물』은 예정된 상실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인간의 이야기이자, 어른.. 2022.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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