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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와 친구가 되는 방법-신계숙 배화여대 전통조리과 교수 2년 만에 대면강의가 시작되었다. 2년 학교에 다니고 졸업하는 학생들은 학교에 나온 날이 열 번 남짓밖에 안 된다. 꽃 피는 춘삼월에 입학식을 하고 학과별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축제를 하는 등, 사람들이 통과의례를 치르듯 대학에서 행하는 모든 과정이 통으로 생략된 채 졸업을 하게 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2년 동안 학생들을 기다려 온 나는 설레고 흥분되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학생들도 마스크를 쓰고 중무장을 하여 얼굴을 모두 가렸으나 학교에 왔다는 기쁜 표정은 가려지지 않는다. 친구 사귈 틈도 없었을 것이므로 출석을 부르면서 우리 반에 이런 친구가 있다고 소개해 주었더니 서로 박수로 환영한다. 서먹서먹했던 분위기도 금세 화기애애하게 바뀌는 순간이다. 강의를 먼저 해야 할까 반갑다는 인사를 먼저 해야 할.. 2021. 11. 21.
그 많던 한량은 다 어디로 갔을까-장석주 시인 어린 시절, 농사를 짓는 광산 김씨 외가에 홀로 의탁되어 자랐다. 광산 김씨 문중 큰 제사마다 검은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며 참석하던 할아버지뻘 친척 중 ‘삼례 양반’이 기억에 남는다. 늘 사람 좋은 웃음을 웃고, 막걸리를 좋아하던 이였다. “그 어른 참 한량이었지.” 그이를 한량이라고 지목하는 말에 비난의 뜻은 없었다. 정약용은 공무에서 물러 나와, 건(巾)을 젖혀 쓰고 울타리를 따라 걷고, 달 아래서 술을 마시며 시를 지었다. 산림과 과수원·채소밭의 고요한 정취에 취해 수레바퀴의 소음을 잊었다고 했다. 뜻 맞는 벗들과 ‘죽란사’(竹欄社)라는 시모임을 만들어 날마다 모여 시를 돌려 읽고 취하도록 마신 정약용 같은 선비가 한량의 원조였을 테다. 돈 잘 쓰고 풍류를 즐기는 향촌의 유력 계층 젊은이들은 가계.. 2021. 10. 31.
[고규홍의 나무생각] 나무 심는 마음으로 나라를 일으키다 이 땅에 새 나라를 일으키겠다는 마음을 다진 이성계(李成桂, 1335~1408, 재위 1392∼1398)는 하늘을 바라보며 나무를 심었다. 20대의 청년 이성계는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개경을 탈환하는 위업을 비롯해 왕실의 안정을 도모하며 승승장구했다. 무예가 뛰어난 그는 특히 활 솜씨가 뛰어나 ‘신궁’(神弓)이라는 칭호를 얻으며, 역사상 최강의 공격형 장수로 이름을 떨쳤다. 운이 다한 고려를 뒤엎을 꿈을 꾸던 세력들은 자연히 이성계 주변에 모여들었다. 그러나 인맥뿐만 아니라 경제력 또한 만만치 않았던 이성계는 귀족 출신이 아닌 데다 변방 세력이었다. 그가 기존의 세력을 뒤엎고 새 나라를 일으킨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생명까지 내던져야 할 만큼 위험한 도전이었다. 고민은 깊었다. 이성계는 조선 팔.. 2021. 9. 4.
[서효인의 ‘소설처럼]살아야 한다 -현호정, ‘단명소녀 투쟁기’ 습작기의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설픈 결말은 주인공의 ‘죽음’이다.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많은 작품에서의 죽음은 논외로 하자.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장대하고 기구한 서사를, 이제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가 따라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방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보다는 역시 삶의 어느 순간을 포착해, 거기에서 생애 전반의 의미를 비추어 보는 것이 좋은 소설의 요령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소설에서 주인공은 쉽사리 죽지 않는다. 바꿔 말해 소설가는 주인공을 쉽게 죽이지 않는다. 주인공은 어떻게든 살아 내려 한다. 어떻게든 살고자 한다. 주로 이 ‘어떻게든’이 소설의 결정적 장면이 된다. 우리가 삶을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살아 내려는 삶에서 죽음은 일종의 회피다. 좋은.. 2021.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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