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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담긴 세상

[서효인의 ‘소설처럼]살아야 한다 -현호정, ‘단명소녀 투쟁기’

by 광주일보 2021.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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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기의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설픈 결말은 주인공의 ‘죽음’이다.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많은 작품에서의 죽음은 논외로 하자.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장대하고 기구한 서사를, 이제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가 따라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니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방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보다는 역시 삶의 어느 순간을 포착해, 거기에서 생애 전반의 의미를 비추어 보는 것이 좋은 소설의 요령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소설에서 주인공은 쉽사리 죽지 않는다. 바꿔 말해 소설가는 주인공을 쉽게 죽이지 않는다. 주인공은 어떻게든 살아 내려 한다. 어떻게든 살고자 한다. 주로 이 ‘어떻게든’이 소설의 결정적 장면이 된다. 우리가 삶을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살아 내려는 삶에서 죽음은 일종의 회피다. 좋은 소설은 삶의 진상을 피해 돌아가는 법이 없다. 죽지 않고 살아 그것을 끝끝내 돌파하려 할 것이다.

현호정의 소설 ‘단명소녀 투쟁기’는 죽음을 죽여, 삶을 찾고자 하는 이야기다. 죽음을 돌파해 삶에 도달하려는 소설이다. 주인공 수정은 그저 입시 고민으로 찾아간 점집에서 반신 무당인 ‘북두’로부터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단명할 운명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이에 대한 수정의 대답은 간결하고 단호하다. “싫다면요?” 죽음을 피하고 싶다면 남동쪽으로 계속해서 걸으라고 북두는 말한다. 그 길은 ‘북망산을 등지고 걷는 길, 차갑고 딱딱한 달 대신 따뜻하고 무른 해를 향해 가는 길’이다. ‘전 생애에 걸친 길’이기도 하다. 수정은 묻는다. “버스 같은 거 타도 되는 거예요?”

 

소설의 모티프는 ‘북두칠성과 단명 소년’ 등의 고전 설화다. 본디 수정은 먼 곳으로 가는 길 앞에서 현대 문명의 이기인 버스를 떠올리는 현대의 소녀였지만, 죽음을 죽이러 가는 길에서는 구비 전승된 이야기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환상적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그곳에서 사자만큼 커다란 개 ‘내일’의 등을 타고 이동하고, 삶 대신 죽음을 택하고자 하는 동료 ‘이안’과 함께하게 된다.

그들의 여정은 현실에 발 딛지 아니한 것으로 보인다. ‘명부’와 ‘이계’, 동물의 등을 타고 이동하는 설정, 눈(目)·모기·허수아비의 형상을 한 괴물들, 논리적 전개라고 볼 수 없는 사건의 연쇄 그리고 삶을 지속하기 위한 연명담…. 현대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형식이지만, 이야기 자체에 매력을 간파하는 감각이 있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형식이기도 하다.

옛이야기를 변형 또는 차용한 듯하지만, 작가는 최신 서사 기법을 활용하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수정과 이안이 명부의 미션을 해결해 나가며 더 강한 상대와 맞닥뜨리는 설정은 롤플레잉 게임의 기본 설정을 닮았다. 작은 섬에서의 정처 없는 모험은 던전(주로 온라인 게임에서 몬스터들이 모여 있는 소굴)에서의 길 찾기와 다르지 않다.

구전 설화와 현대 게임이 뒤섞인 서사 전략에서 주인공이 찾는 것은 삶과 죽음이다. 가장 오래된 이야기의 방식과 가장 최근의 스토리텔링 기법이 만나 독자 앞에 철학적 질문을 부려 놓는다. 수정의 대답은 역시 단호하며 간결하다. “두렵고 싶지 않다. 떨고 싶지 않다. 죽고 싶지 않다….”

운명으로부터 죽음을 선고받은 단명소녀의 투쟁기는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오는 기이한 모험담이자 전 생애에 걸친 걸음걸음이 된다. 이 이야기를 이끄는 힘은 소정이 가진 삶에 대한 의지이다. 죽음으로의 매혹이 아닌, 삶으로의 의지가 이야기를 이야기답게 한다. 현실에서 어떤 사람은 본인이 본인의 인생과 행적으로 집필한 이야기의 끝을 스스로 선택한 죽음으로 끝맺으려 한다. 그러한 죽음은 그의 이력을 불기소 처분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죽음은 그의 인생을 허무맹랑한 절벽으로 내몬다.

죽음은 본인에게는 최소한의 책임이 되겠지만 타인에게는 최대한의 무책임이자 비겁함이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에 어떤 결점을 남겼든, 우리는 살아야 한다. 삶으로서 죽음을 넘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든 삶을 다한 뒤 죽음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비로소 운명에 복속할 자유가 생길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살아야 한다. 어떻게든, 어떻게 해서라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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