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에 가면 전원주택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세컨드하우스, 컨테이너하우스, 이동식주택, 6평 미만의 농막 등 사례도 다양하다. 평소 꿈꿨던 상상의 설계도와 현실이 잘 조화되어 만족한 분들이 있고, 예상 밖의 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견해를 달리할 수 있겠지만 8년 동안 홀로 황토방을 지어 본 경험에 비춰 보면 크기와 위치의 선택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작게 지어 보자. 미국·일본의 스몰하우스를 소개한 책자도 많고, ‘최소의 집’ 모형 전시회가 열리기도 한다. 그러나 작정하고 짓는 전원주택이니 넓고 크게 짓는다. 광양항에 쌓여 있는 거대한 육송 원목들을 한옥의 대들보로 만들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시원한 겉모습과는 달리 실제 생활에는 어려움이 많다. 여름 냉방과 겨울 난방에 걱정되는 비용, 구석구석 청소, 빈 공간 치장, 큰 집 관리가 힘들어진다. 앞으로 찾아올 자녀, 손주들을 생각해서 2층까지 올리니 더 커진다.(생각만큼 많이 찾지도, 오래 머물지도 않는다) 이 정도 되면 내가 집안에서 편히 살아가는지, 집을 모시고 사는지 구분이 안 된다. 본채를 두고 옆에다 조그만 사랑채를 다시 짓는 경우도 있다. 공간이 줄면, 결핍도 준다고 했는데 공간이 커지니 채울 것이 많아진다.
그리고 관리와 비용뿐만 아니라 주택을 처분할 수밖에 없을 때 매매도 쉽지 않고 제값을 쳐주지도 않는다. 집이 외딴곳에 자리한 경우 밤손님이라도 한번 다녀가게 되면 두려움 때문에 살기가 어렵다. 몸이 아프면 많은 것들이 일순간 정지다. 큰 병원이 있는 도회로 옮기게 된다. 텃세도 힘들게 한다. 특히 가까운 이웃과 갈등이 생기면 전원주택이 아니라 민원 주택으로 ‘앳가심’이 된다. 당사자들 중 한 집이 이사를 가야 고통이 끝나는데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밖에도 이런저런 일로 막상 옮기려 하면 덩치가 큰 집은 집이 아니라 짐이 되는 것이다.
터 잡기도 어렵다. 대지를 고를 때 마지막 결정은 겨울철이 좋다고 한다. 무성하게 우거진 여름철의 풍광을 보았다면 다시 겨울에 나뭇잎이 떨어져 주변의 민낯이 드러나는 모습도 확인하라는 말이다. 여기에다 일조량이 풍부한 남향의 터라면 더없이 좋으리라.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지리(풍수), 생리(경제), 인심(사회), 산수(자연)를 두루 고려하라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의 선택이라 망설이면 놓치고, 서두르면 속기가 쉽다. 한두 가지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마음이 평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곳이면 정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황토방을 좋아하면서 옷깃에 흙 묻을까 걱정하고, 잔디마당과 텃밭 채소를 가꾸면서 잡초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다면 아무리 좋은 터라도 길지(吉地)가 아니다.
군 생활을 여수 향일암 근처에서 했다. 일출이 유명하다. 남들은 평생 몇 번 보지 못할 일출을 아침마다 보았다. 하지만 훈련, 고참들의 집합 등으로 마음이 편치 않으니 반복되는 일출은 그냥 하루의 시작일 뿐이었다. 그래서 천불동계곡이나 칠선계곡 옥녀탕 앞에다 전원주택을 짓고 살아도 심간이 편치 않고, 자기 삶의 철학이 없으면 그저 산골짝에 자리한 집일 뿐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기가 살 공간을 자력으로 만들지 못하는 절망의 이 시대. 아파트의 크기나 위치가 부의 상징이고 성공의 징표가 되는 지금 어느 곳이든 마음이 머무는 곳에 작은 크기의 집을 지으라고 한가한 소리를 했다. 소유는커녕 전월세도 감당할 수 없는 현대판 유랑민의 분노가 치솟고, 자녀의 거처 마련에 흙수저 하나 보태주지 못하는 부모들의 자괴감이 들끓고 있다. 아등바등하면 단칸방 사글세에서 상하방 전세로, 전세살이 서러워도 적금 붓고 계 타서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던 희망의 사다리를 끊어 놓고, 평생을 빌려 사는 임대주택의 임대 인생으로 만들어버린 요즘의 주택정책 앞에서 사치스러운 말장난을 한 것 같다.
집은 주인을 안아야 하고 주인은 집에 안겨야 하는데, 집 없는 서민들은 소유할 수도, 안겨 살 수도 없는 머나먼 상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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