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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5

[서효인의 ‘소설처럼’] 우리는 신이 아니지만 -구병모 ‘바늘과 가죽의 시’ 이제 초등학생이 된 둘째 아이에게는 심각한 고민이 하나 있다. 늙지 않고 살 수는 없느냐는 것이다. 왜 늙지 않아야 하냐고 물어보면 늙고, 늙고, 또 늙으면 죽으니까 늙으면 안 된다고 한다. 죽으면 할머니도, 엄마도, 아빠도 세상에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냐면서 상상만 해도 슬프다는 듯 풀이 죽어 말한다. 인류가 동물과는 구별되는 사고(思考)의 능력을 갖춤과 동시에 품었을 이 거대한 질문에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 그저 그런 걸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을 돌릴 뿐인데, 아이는 아이디어를 하나 제시한다. 올 추석에 소원을 빌면 된단다. 모두가 죽지 않게 해 달라고. 그리고 누구도 태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죽는 사람이 없는데 태어나는 사람이 없으면 이.. 2021. 6. 18.
[서효인의 ‘소설처럼’] 위대한 야구 소설…필립 로스 ‘위대한 미국 소설’ 필립 로스가 1973년 출간한 장편소설 ‘위대한 미국 소설’의 원제는 ‘The Great American Novel’이다. 말 그대로 위대한 미국 소설이라는 뜻으로서, 미국의 총체성을 뚜렷하게 밝히는, 그리하여 역사에 남게 된 소설을 일컫는 용어로 쓰인다. 예를 들어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 허먼 멜빌의 ‘모비 딕’,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 같은 작품을 ‘위대한 미국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소설은 그러니까 배짱 좋은 신인 투수처럼(1973년은 위대한 소설가 필립 로스가 40세 청년이던 시절이었다.) 소설 제목 자체를 ‘The Great American Novel’로 내놓은 것이다. 졸작이거나 평작 아니, 그럭저럭 훌륭한 작품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제목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 2020. 12. 2.
[서효인의 ‘소설처럼’] 그들보다 힘이 센 소설 천선란 ‘천 개의 파랑’ 정치는 생물이고 선거는 타이밍이라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도중에도 많은 것이 바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은 무생물이고 인쇄물은 요지부동이라 문학은 처음 만들어진 그대로 있다. 정치는 세계를 재단하고 평가하여 운용한다. 문학은 사람들의 해석과 수용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정치는 거시적인 가치에서부터 일상의 사소함까지 거의 모든 것에 영향력을 끼친다. 문학은 책을 덮어 버리면 그만이고 대체할 수단 또한 많다. 정치는 그것을 대신할 최신의 체제를 고안하기 매우 어렵다. 우리는 정치에는 순응하거나 열의에 차 들뜨지만 문학에는 쉽게 반발하거나 혹은 무관심하다. 여러모로 정치는 힘이 세다. 문학은 하잘것없다. 정치 중에 가장 중차대한 이벤트가 선거이고, 지구의 모든 선거 중에 또.. 2020. 11. 7.
[서효인의 ‘소설처럼’] 가족과의 거리 -매기 오파렐 장편소설 ‘불볕더위에 대처하는 법’ 2020년을 온통 지배하고 있는 바이러스의 창궐은 우리의 삶 거의 모든 걸 바꿔 버렸다. 아마도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을 것이다.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인류의 몸에 깊게 새겨진 불안마저 사라지긴 어려울 터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임계점을 넘은 듯한 기후 위기는 별개의 문제로 남는다.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니 우리는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이다. 새로운 삶을 준비해야 하고, 그 새로운 삶은 시작한다는 기미도 없이, 멋대로 시작되어 버렸다. 코로나19는 가족 관계에 있어서의 변화도 일으켰다. 그사이 세계적으로 이혼율이 치솟았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완전한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재택근무와 휴교.. 2020.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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