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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의 ‘소설처럼’] 가족과의 거리

by 광주일보 2020.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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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기 오파렐 장편소설 ‘불볕더위에 대처하는 법’

 

2020년을 온통 지배하고 있는 바이러스의 창궐은 우리의 삶 거의 모든 걸 바꿔 버렸다. 아마도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을 것이다.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인류의 몸에 깊게 새겨진 불안마저 사라지긴 어려울 터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임계점을 넘은 듯한 기후 위기는 별개의 문제로 남는다.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니 우리는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이다. 새로운 삶을 준비해야 하고, 그 새로운 삶은 시작한다는 기미도 없이, 멋대로 시작되어 버렸다.

코로나19는 가족 관계에 있어서의 변화도 일으켰다. 그사이 세계적으로 이혼율이 치솟았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완전한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재택근무와 휴교 등으로 인해 온 가족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짐으로써 가족 사이에 묵혀 두거나 방치되었던 문제가 폭발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타인과의 대면 접촉을 줄이는 일은 가족과의 접촉면을 확장시킬 수밖에 없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연일 브리핑으로 강조하는 팬데믹하에서의 덕목, “가족과 함께 집에 머물러라”는 가족과의 관계를 다시 환기시킨다. 우리 가족은 이토록 붙어 있기에 문제가 없는 관계인가? 괜찮은 사이일까?

북아일랜드 작가 매기 오파렐의 장편소설 ‘불볕더위에 대처하는 법’은 이 시기에 읽을 만한 가족 드라마이자 스릴러다. 예기치 않은 출생의 비밀이 있고, 아버지의 실종이 있으며, 형제자매 사이의 오해와 화해가 있다. 대한민국 지상파의 주말 드라마가 생각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 소설에는 런던으로 이주한 아일랜드인의 역사가 있고, 가족의 비밀은 그 역사의 디테일에서 비롯된다. 또한 이 소설은 영상이 아닌 소설이 가진 미덕(인물의 심리와 시선의 변화에 따라 너울대는 진술, 지나칠 것 없이 모든 것에 부여되는 상징성, 상상력 너머의 것을 재현하는 정제된 묘사)들이 있다.

‘불볕더위에 대처하는 법’의 스토리상 시간은 나흘이다. 플롯상의 시간은 수십 년이다. 한 가족의 아버지가 실종되고, 흩어진 가족이 다시 모여 사건의 단서를 찾고, 그렇게 찾은 단서를 통해 아버지의 향방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가 전부이지만, 이야기의 틈새에 가족의 역사는 빡빡하게 끼어 있다. 자신의 실수로 말미암아 결혼 생활이 흔들리는 걸 무참히 바라보고 있는 큰아들, 이혼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고 현재의 재혼 생활에도 불안감을 느끼는 큰딸, 난독증을 숨기고 타지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막내에 이르기까지 이들 각자의 서사는 가족의 관계를 통해 여러 번 꼬이고, 이따금 풀린다.

그 관계의 시원은 북아일랜드의 지난한 역사에 있었다. 최근까지도 (서유럽에서는 드물게) 독립과 자치를 둘러싼 종교적·계급적 갈등으로 유혈 투쟁이 있었다. 가족의 비밀은 거기에서 시작된다. 가족의 시작마저 거기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인생은 역사가 흩뿌리는 가느다란 물줄기를 피할 도리가 없다. 때로는 우리가 그 물줄기가 되기도 한다. 코로나는 훗날 한 시대를 지배한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1980년 5월 광주가 그랬고, 몇 년 전 광화문의 촛불이 그러했듯이. 그리고 우리 곁에 가족은 이 역사 속에서 가족의 관계를 새롭게 업데이트할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아일랜드가 자랑하는 자연 풍광이 펼쳐진다.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한 북아일랜드의 외딴섬. 그곳에서 가족은 모두 모여 있다. 곧이어 아버지가 슬쩍 손을 들고 나타난다. 그간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속마음을 연다. 그렇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족이 된다.

모두가 위기인 시국이다. 끝을 모르는 바이러스의 공습에 우울감이 증폭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거대한 역사에 의해 물리적으로 가까워진 가족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미시적인 역사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사회적 거리를 둠으로써 가족과의 비사회적 거리는 가까워졌다. 그건 어떤 가족에게는 분명한 기회가 될 것이다. 다시 연결되고, 다시 시작되고, 다시 따스해지며, 다시 곁에 내줄 기회. 오로지 그 기회의 옳은 활용만이 코로나19가 이후의 삶을 보장해 줄지도 모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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