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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의 ‘소설처럼’] 그들보다 힘이 센 소설

by 광주일보 2020.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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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란 ‘천 개의 파랑’

 

정치는 생물이고 선거는 타이밍이라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도중에도 많은 것이 바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은 무생물이고 인쇄물은 요지부동이라 문학은 처음 만들어진 그대로 있다. 정치는 세계를 재단하고 평가하여 운용한다. 문학은 사람들의 해석과 수용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정치는 거시적인 가치에서부터 일상의 사소함까지 거의 모든 것에 영향력을 끼친다. 문학은 책을 덮어 버리면 그만이고 대체할 수단 또한 많다. 정치는 그것을 대신할 최신의 체제를 고안하기 매우 어렵다. 우리는 정치에는 순응하거나 열의에 차 들뜨지만 문학에는 쉽게 반발하거나 혹은 무관심하다. 여러모로 정치는 힘이 세다. 문학은 하잘것없다.

정치 중에 가장 중차대한 이벤트가 선거이고, 지구의 모든 선거 중에 또한 가장 힘이 세고 영향력이 큰 선거가 미국 대통령 선거일 것이다. 지금은 개표가 한창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는지에 따라 우리의 삶은 거기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걸 알기에 자꾸만 들여다보는 것이다. 선거권도 없는, 태평양 건너 머나먼 이국의 정치 이벤트를. 지난 선거 예측에서는 너무나 큰 오류가 있었기에 많은 언론이 이번 선거 예측에는 꽤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누가 당선되느냐 하는 예상보다는 당선자에 따른 우리 삶의 변화 혹은 이익을 분석하는 데 더 정성을 쏟는 듯도 하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대통령과 상원의 권력이 각기 다를 때, 증시는 하락할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면 신소재 사업이 활황일 것이고, 누가 대통령이 되면 전통적 중공업에 투자가 이뤄질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디에 투자를 해야 하며…… 하는 이런 이야기들.

올해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수상작 ‘천 개의 파랑’을 읽고 뜬금없이 미국 대통령 선거를 말하는 이유는 이 엄연한 현실이 도통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아서다. 현실감은커녕 이렇게나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일 수 있는지 아연실색한다. 특정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주가의 하락이나 상승보다 더 인간적이고 절대적인 이유가 많다.

인종과 성별 혹은 성적 지향이나 장애의 유무에 따라 누군가를 혐오해서는 안 된다. 그런 혐오를 일삼는 세력을 비호하거나 그들의 폭력을 방조해서도 안 된다. 꼭 대통령이라서 안 되는 게 아니라 원래 사람은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이제껏 그러던 사람이 최강대국의 대통령이었으니, 기후 위기라는 전 지구적 위기에 대응하기는커녕 팬데믹의 대혼란에 전 지구적으로 휘청대는 게 어쩌면 자연스러울 일이다.

‘천 개의 파랑’은 자연스럽지 못한 로봇이 등장한다. 경마장의 기수 역할을 하도록 설계된 로봇이지만 어떤 우연에 의해 인지와 학습 능력을 갖는다. 그 능력으로 인해 로봇 ‘콜리’는 다른 기수 로봇과는 다른 특별함을 갖는다. 파란 하늘의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자신의 파트너인 경주마의 감정을 알아챈다.

경주마 투데이는 한때 경마장의 에이스로 활약했으나 부상을 입고 이제는 달릴 수 없다. 빠르지 않은 경주마는 인간에게 활용 가치가 없으므로 죽음으로 내몰린다. 어느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고 자신만의 감정과 감각을 지녔으며, 아직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한 어린 말이어도 잔인한 인간은 그 생명의 연장을 허용하지 않는다.

소설에는 로봇을 다루고, 로봇과 대화하는 많은 인간이 등장한다. 사고로 남편을 잃고 배우로서 경력도 단절된 보경, 선천적 장애로 휠체어를 타야 하는 은혜, 그런 은혜의 동생으로서 표현하지 못할 소외감을 느껴 온 연재, 연재의 친구가 되어 준 지수, 그리고 그들 곁의 좋은 어른들이 있다. 그런 인물들은 SF라는 형식답게 로봇의 도움을 받아 사태를 해결한다. 행복했던 기억을 복원하고, 자유로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곁의 누군가와 함께 천천히 나아가는 방법을 찾게 되고 그리하여 천 개의 파랑을, 모두 다르지만 다들 아름다운 파랑을 발견하게 된다.

좋은 SF 소설이 거의 그렇듯이 ‘천 개의 파랑’ 또한 미래의 기술을 거쳐 다시 인간에게로 돌아온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어제의 소설은 내일의 희망을 말하지만, 오늘의 정치는 다시 절망을 들이밀고 있다. 이 절망 속을 버티게 하는 게 소설이라면, 어쩌면 문학은 정치보다 힘이 센 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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