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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17

[서효인의 ‘소설처럼’] 우리는 신이 아니지만 -구병모 ‘바늘과 가죽의 시’ 이제 초등학생이 된 둘째 아이에게는 심각한 고민이 하나 있다. 늙지 않고 살 수는 없느냐는 것이다. 왜 늙지 않아야 하냐고 물어보면 늙고, 늙고, 또 늙으면 죽으니까 늙으면 안 된다고 한다. 죽으면 할머니도, 엄마도, 아빠도 세상에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냐면서 상상만 해도 슬프다는 듯 풀이 죽어 말한다. 인류가 동물과는 구별되는 사고(思考)의 능력을 갖춤과 동시에 품었을 이 거대한 질문에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 그저 그런 걸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을 돌릴 뿐인데, 아이는 아이디어를 하나 제시한다. 올 추석에 소원을 빌면 된단다. 모두가 죽지 않게 해 달라고. 그리고 누구도 태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죽는 사람이 없는데 태어나는 사람이 없으면 이.. 2021. 6. 18.
[서효인의 ‘소설처럼’] 소설의 미래, 현재의 인간 가즈오 이시구로 ‘클라라와 태양’, 김초엽·김원영 ‘사이보그가 되다’ 수많은 SF소설이 가까운 미래를 다룬다. 가까운 미래에 인류는 로봇과 감정적 교류는 물론 육체적 관계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소설가가 많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30년 뒤일 뿐이지만, 2050년 정도가 되면 인간과 로봇의 결혼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합법적인 일이 될 것이다. 게으른 SF는 미래를 표현하는 클리셰(진부하거나 틀에 박힌 생각 따위)로 로봇이나 인공지능의 성매매를 쓰고는 한다. 누구나 상상하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 미래는 누군가에게는 디스토피아이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간절하게 기다리는 흥미진진한 내일이다. 동시에 지금을 비추는 오목하고 볼록한 거울이 될 수도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신작 ‘클라라.. 2021. 5. 22.
[서효인의 ‘소설처럼’] 존엄과 품위가 있었던 소년에 대하여…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작 때는 루터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명연설을 남긴 1960년대다. 엘우드는 흑인이었기에 별다른 꿈을 갖기 어려웠다. 다만 킹 목사의 목소리가 담긴 앨범 ‘자이언 힐의 마틴 루터 킹’을 반복해 듣는다. 그는 할머니의 강인하고 헌신적인 교육으로 바르게 자랐으며, 학업 성적도 우수했다. 그를 아는 모두는 그가 성실하고 착하다는 것을 안다. 그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인간의 품위와 존엄을 지키는 쪽으로 행동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굳이 그렇게 행동하는 흑인더러 어떤 이들은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다. 엘우드는 가끔 “정말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엘우드는 미국의 소설가 콜슨 화이트헤드의 소설이자 2020년 퓰리처 수상작 ‘니클의 소년들’의 주인공이다. 니.. 2021. 3. 25.
[서효인의 ‘소설처럼’] 서러운 역사를 읽다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 영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에는 ‘계관시인’이라는 게 있다. 미국에서는 매해 계관시인이 새롭게 지정되며 특별한 의무는 없다. 하지만 그들의 시가 국가의 중요 행사에 쓰이곤 한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한 시대를 대표한 시인에게 월계관을 씌워 존경을 표하던 전통이 지금까지 계승된 셈이다. 시인에게 월계관은 특별한 지위나 권력이라기보다는 그 시대의 언어를 대변하고 세계의 정서를 표현해야 한다는 부담스러운 권한에 가까울 것이다. 온갖 매체와 소셜미디어에서 각각의 목소리가 모두 다른 소리를 내는 작금이기에 계관시인의 존재와 역할은 그마저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 어떤 시가 2020년의 혼란을 함축하겠는가. 그 어떤 시인이 2021년의 군상을 예감하겠는가. 오늘날의 시인은 그런 일을 하지 못한다. 아니, 하.. 2021.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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