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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담긴 세상

[서효인의 ‘소설처럼’] 존엄과 품위가 있었던 소년에 대하여…니클의 소년들

by 광주일보 2021.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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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슨 화이트헤드 작  

때는 루터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명연설을 남긴 1960년대다. 엘우드는 흑인이었기에 별다른 꿈을 갖기 어려웠다. 다만 킹 목사의 목소리가 담긴 앨범 ‘자이언 힐의 마틴 루터 킹’을 반복해 듣는다. 그는 할머니의 강인하고 헌신적인 교육으로 바르게 자랐으며, 학업 성적도 우수했다. 그를 아는 모두는 그가 성실하고 착하다는 것을 안다. 그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인간의 품위와 존엄을 지키는 쪽으로 행동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굳이 그렇게 행동하는 흑인더러 어떤 이들은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다. 엘우드는 가끔 “정말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엘우드는 미국의 소설가 콜슨 화이트헤드의 소설이자 2020년 퓰리처 수상작 ‘니클의 소년들’의 주인공이다. 니클 감화원은 우리나라로 치면 문제를 일으키는 소년들을 감금하여 교화시키는 소년원이다. 그곳에서도 흑인과 백인의 공간은 분리되어 있었다. 엘우드가 감화원에 가게 된 것은 경찰과 판사의 터무니없는 오판으로 인한 누명 때문이지만, 그곳이 아니라 하더라도 엘우드의 미래 같은 건 결정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니클에 가기 전에 엘우드와 엘우드의 부모는 호텔에서 일했다. 백인은 손님으로, 흑인은 노동자로 임해야 하는 호텔에서. 엘우드가 진학한 (학비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갈 수 있게 된) 대학은 수 킬로미터를 걸어야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그 길에 얻어 탄 차는 공교롭게도 도난된 차량이었다. 그렇게 엘우드는 니클에 왔다.

니클 감화원에서도 엘우드는 품위와 존엄의 편에 선다. 그는 이유 없이 괴롭힘을 당하는 이를 돕다가 체벌을 당한다. 다시 말해 품위와 존엄을 이유로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는다. 그곳은 백인 아이들에게는 ‘아이스크림 공장’으로 불리고 흑인 아이들에게는 ‘화이트하우스’라고 불린다. 백인에게 그곳은 몸에 아이스크림처럼 형형색색의 멍이 들기 때문이고, 흑인에게 그곳은 마치 백악관처럼 엄정하고 권위 있는 집행 기관이기 때문이다. 집행은 물론 매질이다. 사회와 가정에서 문제아로 이미 찍혀 있던 아이들은 그곳에서 종종 갈 곳 없이 사라지고는 했다. 엘우드의 시선을 따라서 소설은 니클의 소년들을 하나하나 지목한다. 소년들의 고통과 소년들의 체념과 소년들의 죽음을, 유기된 시신을 발굴하듯 독자 앞에 풀어놓는다.

소설의 놀라움은 물론 젖어버린 퍼즐 조각처럼 슬픈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반전에 있겠지만, 그보다 눈에 익어 놀라운 장면이 따로 있었다. 소년들을 가혹하게 때리고 성적으로 농락하고 죽음에 이르게까지 했던 가해자들이 하나같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기강을 조금 잡으려 했다’고 말하는 뻔뻔함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평범한 노인이 되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현실감이었다. 피해자들은 40년∼50년 지난 사건 때문에 지금껏 고통 받고 있었다. 피해자들에게 고통의 장면은 정교하게 묘사된 소설의 한 페이지보다, 미장센이 살아 있는 영화의 한 컷보다, 그 무엇보다 강렬하고 끈질기고 생생할 것이었다. 이 소설은 그 기억의 생생함을, 그 놀라움을, 그리하여 어쩔 수 없는 비탄을 그린다.

마치 어디서 여러 번 들은 것처럼 익숙한 이야기다. 바로 우리 곁의 이야기다. 여태 남아 있는 오월의 상흔을 기억할 수 있다. 믿을 수 없는 학대가 자행된 시설들을 떠올릴 수도 있다. 30년 전 내 몸을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때리던 학교 선생이 기억날 수도 있다. 15년 전 같은 반 학생을 따돌리고 괴롭히고 폭행했던 녀석을 소환할 수도 있다. 불쑥불쑥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에 몸이 부르르 떨릴 수 있다.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 화면 속 폭력적 장면에 심장이 빠르게 뛰고 어깨가 움츠러들 수도 있다. 그럴 수 있다. 피해자는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과 품위가 무너졌던 그날의 기억을. 존엄과 품위를 완전히 벗어 던진 가해자의 행동을.

니클 감화원에서 엘우드의 친구가 된 이의 이름은 터너다. 터너 또한 엘우드에게 묻는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고. 엘우드는 늘 생각했다. 사람으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해. 엘우드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짐승으로 사는 것에 대해. 어떤 가해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짐승에 가깝다. 짐승이 자신의 행동을 자세히 기억하지 못하듯이, 가해자는 그날을 기억하지 못한다. 존엄과 품위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이 우리를 사람이게 하는가? ‘니클의 소년들’에서 엘우드의 친구, 터너는 조금의 힌트를 준다. 그것은 이름을 지키는 일이고, 그 일의 자세한 방법은 소설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

 

 

[서효인의 ‘소설처럼’] 존엄과 품위가 있었던 소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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