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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담긴 세상

[박찬일의 ‘밥먹고 합시다’] 옛날 토스트의 기억

by 광주일보 2021.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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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토스트 프랜차이즈 회사 회장이 화제다. 텔레비전에 나와서 소박하고 털털한 면모가 부각되었다. 가맹점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회사라는 평이 있는 회사여서 더 화제가 된 듯하다. 이 회사 토스트는 식빵 사이에 달걀과 햄 등을 넣고 달달하게 만드는, 이른바 옛날식이다. 요즘은 달지 않은 유럽식 샌드위치가 많이 보급되어 ‘옛날식 대 유럽식’의 구도가 성립되었다.

특히 유럽식 샌드위치는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 있는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에서 바게트나 크루아상 같은 빵을 쓰면서 많이 선보여 인지도가 높아졌다. 그 전에는, 서울 중심으로 생긴 몇몇 유럽식 샌드위치점이 장안의 잘나가는(?) 젊은이들의 명소가 되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옛날식이라고 부르는 샌드위치는 일제강점기에 경성의 ‘모던보이’나 ‘모던걸’과 유력 인사들, 식민지 관료와 자본가들이 모이는 양식집과 카페테리아의 주력 메뉴였다. 당시 큰 히트를 친 ‘산도윗치’가 바로 그것이다. 아무개 제과의 ‘000산도’라는 과자 역시 두 개를 겹쳐서 샌드위치처럼 만들었다는 뜻의 일본식 표현이다.

 

옛날식 샌드위치는 한국식으로 적당히 변형되었다. 70년대부터 몇몇 경양식집이나 시내 호텔에서 판매했는데 점차 길거리 음식으로 변해갔다. 주요 번화가와 오피스타운에서는 리어카 포장마차에서 이 메뉴를 팔아서 엄청난 히트를 쳤다. 아침밥을 굶고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즐겨 먹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샌드위치는 해장국과 함께 아침 메뉴의 양대 산맥을 이뤘다. 주로 여성들과 신세대 직장인들이 즐겼다.

 

커다란 철판을 놓고 1파운드(450그램 정도)짜리 마가린을 휙휙 둘러서 고소한 기름을 낸다. 이 냄새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혹했다. 그 위에 양파와 당근을 썰어 넣고 계란 지단을 두툼하게 부쳤다. 설탕을 넉넉히 뿌린 후 철판에 구운 식빵 두 쪽에 지단을 끼워 넣고 캐첩을 뿌려 하얀색 티슈에 말아 제공했다. 우유나 두유도 함께 판 것은 물론이다. 출근시간 외에도 오후 출출한 시간대에도 장사가 잘 됐다. 젊은이들이 몰리는 유흥골목에서는 심야에도 자주 보였다. 흔한 샌드위치지만 하나의 명물로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이런 ‘거리 샌드위치’에 쓰는 마가린은 유지(油脂)의 일종이지만 한국 음식사에 끼친 파급력은 매우 컸다. 버터 같은 고급 유제품이 없던 시절, 서양 음식을 만들 때 이처럼 좋은 재료가 없었다. 제과·제빵업이 크게 성장한 것도 마가린 덕임을 빼놓을 수 없다. 버터는 생산량 자체가 적었다. 우유가 생우유로 먹는 전유 상태로 주로 유통되었기에 늘 모자랐다. 우유에서 지방을 모아 만드는 버터는 사치스러운 음식일 수밖에 없었다. 고급 호텔에서나 볼 수 있었다.

70년, 80년대까지만 해도 버터는 시내 도깨비시장에서 아주 중요한 품목이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왔는데 품질이 좋은 것은 특히 ‘장교 버터’라고 불렀다. 아마도 고급 사관을 뜻하는 장교라는 단어에서 왔을 것이다. 요즘은 버터가 아주 흔해졌다. 생산량도 크게 늘었고, 수입도 어마어마하다. 수요가 크기 때문이다. 웬만한 파스타집 같은 동네 양식집에서도 버터를 쓴다. 값도 그만큼 싸졌다. 차별화를 한다며 몇몇 제과·제빵 브랜드 등에서는 프랑스산 고급 버터(보통 AOC버터)를 수입해서 쓴다. 이 버터는 원산지와 생산 방법을 국가가 통제하고 인증하는 고급 제품이라고 한다. 이제는 백화점이나 마트 등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마가린은 트랜스지방이 있다 하여 건강에 관심이 높아진 90년대 들어 배척받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오히려 잘 만든 마가린은 포화지방이 없어서 몸에 좋다는 얘기도 나왔다. 실제로 서양의 고급 식품점에서는 날씬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팔리는 최상급 마가린이 있다. 어쨌든 마가린이라고 해서 무작정 배척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게 과학계의 최신 견해다.

유지 즉 기름은 식용유부터 버터·마가린, 소와 돼지 같은 동물의 기름 등을 아우르는 명칭이다. 식품에서 유지의 존재는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가 요즘처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면 질 좋은 유지가 첫 번째이고, 다음으로 고기를 드는 사람도 있다. 유지는 건강 ‘유지’에도 큰 몫을 한다. 물론 몸에 좋다는 들기름·참기름·올리브유를 잘 챙겨 먹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버터나 마가린도 적절히 잘 쓰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

이번 주말에는 맛있는 옛날식 토스트를 집에서 한번 구워 보자. 버터나 마가린으로 프라이팬을 잘 달구는 게 첫 번째 요령이다. 지단을 부쳐 넣을 때 약간의 설탕도 넣어 주면 좋다. 설탕 염려증이 있는 분들이 많은데, 시판 과일주스나 가공 커피 혹은 청량음료에 들어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양의 당류를 떠올려 보시길. 눈에 빤히 보이는 설탕은 양을 조절해서 쓰기 때문에 환자가 아니라면 크게 걱정할 것 없다.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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