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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의소설처럼8

[서효인의 소설처럼] 작고 단호한 연대-이유리 ‘왜가리 클럽’ 소설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양미네 반찬’은 지난달 10일에 망했다.” 우리가 아무리 ‘죽겠다’와 ‘망했다’를 입에 달고 사는 부정의 민족이라 하더라도 실제 사업이 망하는 것은 말버릇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일 것이다. 주인공의 사업은 안타깝게도 지난달 10일 해당 관할 구청에 폐업신고를 했다. 처음부터 망할 기미나 징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개업 초기에는 장사도 꽤 잘되었다. 입지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반찬도 열심히 만들었다. 이런저런 마케팅에도 힘썼다. 그러나 개업한 지 반년 정도 지났을 때부터 매출은 하향 곡선을 그렸고, 점점 줄어들던 수입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내리막길이었다. 몇 달을 모아둔 돈을 까먹으며 버텼지만 더 이상은 버틸 재간이 없었다. 무리였다. 그렇게 양미네 반찬은 망해.. 2021. 10. 10.
[서효인의 ‘소설처럼’] 우리는 신이 아니지만 -구병모 ‘바늘과 가죽의 시’ 이제 초등학생이 된 둘째 아이에게는 심각한 고민이 하나 있다. 늙지 않고 살 수는 없느냐는 것이다. 왜 늙지 않아야 하냐고 물어보면 늙고, 늙고, 또 늙으면 죽으니까 늙으면 안 된다고 한다. 죽으면 할머니도, 엄마도, 아빠도 세상에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냐면서 상상만 해도 슬프다는 듯 풀이 죽어 말한다. 인류가 동물과는 구별되는 사고(思考)의 능력을 갖춤과 동시에 품었을 이 거대한 질문에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 그저 그런 걸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을 돌릴 뿐인데, 아이는 아이디어를 하나 제시한다. 올 추석에 소원을 빌면 된단다. 모두가 죽지 않게 해 달라고. 그리고 누구도 태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죽는 사람이 없는데 태어나는 사람이 없으면 이.. 2021. 6. 18.
[서효인의 ‘소설처럼’] 소설의 미래, 현재의 인간 가즈오 이시구로 ‘클라라와 태양’, 김초엽·김원영 ‘사이보그가 되다’ 수많은 SF소설이 가까운 미래를 다룬다. 가까운 미래에 인류는 로봇과 감정적 교류는 물론 육체적 관계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소설가가 많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30년 뒤일 뿐이지만, 2050년 정도가 되면 인간과 로봇의 결혼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합법적인 일이 될 것이다. 게으른 SF는 미래를 표현하는 클리셰(진부하거나 틀에 박힌 생각 따위)로 로봇이나 인공지능의 성매매를 쓰고는 한다. 누구나 상상하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 미래는 누군가에게는 디스토피아이겠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간절하게 기다리는 흥미진진한 내일이다. 동시에 지금을 비추는 오목하고 볼록한 거울이 될 수도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신작 ‘클라라.. 2021. 5. 22.
[서효인의 ‘소설처럼’] 존엄과 품위가 있었던 소년에 대하여…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작 때는 루터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명연설을 남긴 1960년대다. 엘우드는 흑인이었기에 별다른 꿈을 갖기 어려웠다. 다만 킹 목사의 목소리가 담긴 앨범 ‘자이언 힐의 마틴 루터 킹’을 반복해 듣는다. 그는 할머니의 강인하고 헌신적인 교육으로 바르게 자랐으며, 학업 성적도 우수했다. 그를 아는 모두는 그가 성실하고 착하다는 것을 안다. 그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인간의 품위와 존엄을 지키는 쪽으로 행동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굳이 그렇게 행동하는 흑인더러 어떤 이들은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다. 엘우드는 가끔 “정말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엘우드는 미국의 소설가 콜슨 화이트헤드의 소설이자 2020년 퓰리처 수상작 ‘니클의 소년들’의 주인공이다. 니.. 2021.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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