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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은기자

‘예술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는가’ 백종옥 사진으로 만나는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by 광주일보 2022.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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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희생자 추모 조형물 사진 등 도시 풍경에 스민 역사 기억 전시
25일까지 문화공원 김냇과···“오월 광주도 일상과 밀착되길”

노이에 바헤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
 

사진 속, 붉은 장미꽃 한송이와 함께 찍힌 동판은 무엇일까. 거리 바닥에 놓인 동판에 독일어로 적힌 글귀는 ‘지크프리트 베르너 하우스도르프가/이곳에 살았음 1905년생/1943년 1월 추방됨/아우슈비츠에서 학살당함’이다.독일 베를린 거리 곳곳에서 만나는 작은 동판은 나치가 추방하거나 살해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설지한 추모석이다.

‘작은 역사들을 위한’ 추모석은 희생자가 마지막에 살았던 거주지 앞의 보도에 설치되며 희생자의 이름, 태어난 해와 추방된 해 등이 각인돼 있다. 베를린 출신 작가 군터 뎀니히가 지난 1992년부터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지금도 유럽 전역에서 진행중이다.

예술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는가에 대한 잔잔한 질문을 던지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백종옥(미술생태연구소장) 초대전 ‘사진으로 만나는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전이 오는 25일까지 문화공원 김냇과(동구 구성로 204번길 13)에서 열린다. 목포 갤러리 카페 ‘만호’ 전시에 이은 두번째 전시다.

홍익대를 졸업하고 베를린예술대학에서 조형미술을 전공한 그는 유학중이던 지난 2002년부터 ‘도시 전체가 거대한 기념조형물’인 베를린의 조형물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는 오랜 기간 자료 조사와 사진촬영을 거쳐 지난 2018년 말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도시의 풍경에 스며든 10가지 기념 조형물’(반비 간)을 펴냈다.

백 소장은 베를린의 기념조형물들을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한국에서 흔히 만나는 높이 솟은 진부한 기념탑과는 달리 미술작품으로서 완성도가 높았고 역사적인 사건을 예술적으로 풀어내는 방식도 다양했다. 조형물들은 광고판, 보도블럭, 기차 승강장 등 역사적인 기억을 품은 삶의 장소에 밀착돼 있었고, 그는 일상적인 풍경과 단절되지 않고 제작·설치된 방식을 ‘도시의 피부에 스며드는 형식’이라 정의했다.

이번 전시에는 베를린의 역사 조형물 11개를 담은 사진 40여점이 나왔다. 2000년대 초와 2017년에 촬영한 사진들이다. 사진 속 조형물은 우리가 접했던 것과는 다르다. 높은 제단을 쌓거나 성역화하는 대신 일상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고 도시 풍경에 자연스레 녹아들어있다. 직접적이지도 웅장하지도 않다. 대신 간결하고 압축적이며 상징적이다. 그래서 더 강렬하고, 깊은 인상을 준다.

유대인을 실은, 죽음의 수용소행(行) 화물차가 출발한 그루네발트역의 117번 선로엔 ‘1942년 6월13일/유대인 746명/베를린/알려지지 않은 곳’처럼 ‘열차의 출발’ 기록을 담은 186개의 철판이 설치돼 있다.

나치 추종자들이 자행한 분서의 현장을 상기시키는 ‘도서관’.
 

19세기 초 왕의 경비소로 지어진 노이에 바헤는 독일 재통일 후 ‘전쟁과 폭정의 희생자들을 위한 독일의 중앙 추모소’가 됐다. 텅 빈 내부 중앙에는 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 단 한 작품이 놓여 있고 천장 중앙의 원형 창으로 들어오는 빛은 시시각각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나치를 추종하는 대학생들은 1933년 5월 10일 밤 베벨 광장에서 2만 권이 넘는 책들을 불태웠다. 현재 베벨 광장 지상에는 사각형 투명 유리창만이 있고, 그곳을 통해 내려다 보이는 지하 공간엔 텅 빈 책장이 존재한다. 미하 울만이 1995년 완성한 기념조형물 ‘도서관’은 ‘비워둠’을 택해 더 많은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또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작전명 발키리’의 소재가 되기도 했던, 히틀러 암살을 주도했던 이들의 흔적을 만나는 ‘독일저항기념관’의 조형물도 인상적이다.

처음 공공미술과 역사를 주제로 한 책을 펴내겠다고 했을 때 주변 미술인들도 출판사도 판매는 어려울 거라 지레짐작했다. 하지만 블로그 등에 그의 책을 들고 베를린을 여행하는 사진들이 올라오는 등 호응이 이어졌고 세종도서에도 선정됐으며 전시 바로 전에 3쇄를 찍었다.

“공공미술, 기념조형물이라는 딱딱한 데 컨셉을 맞추는 전문가들의 시각이 굳어져 있는 데 반해 독자들은 유연한 시각으로 기념물들을 대하더군요. 역사적으로 중요하니까 기억해야 한다. 이곳에는 꼭 가봐야한다는 당위성이 아니라,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작품이라는 인식이 더 강해요. 작품을 보며 자연스레 감동받고 궁금해하면서, 역사 속으로 한 발 들어서는 거죠.”

나치 희생자들이 살았던 집 앞에 설치된 추모 동판.
 

백 소장은 국내 기념 공간 조성이나 조형물 제작에 건축학자와 역사학자들이 적극 참여하는 데 반해 ‘현대미술’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예술가들의 참여가 부족한 점이 아쉽다고 했다.

“제가 베를린에서 조형물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도 작품을 본 순간 ‘감동’했기 때문이예요. 기숙사와 가까워 참 많이 다녔던 17번 선로가 대표적이죠. 감동이 있으니 알아보기 시작했고, 공부가 이어졌죠. 미술의 감성으로 바라보고, 해석될 때 그 여운이 오래 간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기념 조형물은 일상에서 분리돼 특별한 공간, 성역처럼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역사를 그대로 재현하는 게 아니라 새롭게 형상화되고, 재해석하면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해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진행형이 아닌, 역사의 유물로 전락하고 말지요.”

백 소장은 ‘오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광주의 추모 공간과 조형물들도 “의무감처럼 묵념하러 가는 곳이 아닌, 베를린 투어처럼 좋은 작품들을 보러가는 여행이 되고, 그 감동을 이어가며 역사를 알아가는 장소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백 소장은 소모임을 대상으로 전시 기간 중 관련 강의도 진행할 예정이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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