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출신·시장·구청장 등 유·무죄 판단 달라진게 없는데 잇단 선처
피해자 합의 거부에도 공탁 이유 감형도…“국민 법감정과 달라” 지적
법원이 항소심에서 여러 이유로 ‘선처’하면서 국민 법 감정과 사뭇 다르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법원은 원칙에 따라 선고를 했다고 하지만 피해자와 지켜보는 국민 입장에선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무죄 판단은 달라진 게 없는데…”=15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법 형사 1부(부장판사 김재근)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기소된 A 부장판사에 대해 벌금 2000만원, 추징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 혐의가 달라진 것도 없고 유·무죄 판단도 1심과 다르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러나 ‘1심 형(刑)인 벌금 3000만원. 추징금 1000만원이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는 피고인 항소가 ‘이유’있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고도의 청렴성과 공정성은 법관이 지켜야할 기본적 가치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일탈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그에 따른 책임 역시 A씨 과오에 상응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라면서도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는 무너져 버린 사법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뒤늦게나마 살아난 양심을 기초로 지난날의 잘못을 털고 거듭나기 위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감형 배경을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추징금 1000만원을 납부한 점, 외벌이 수입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해온 점과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정신·육체적으로 고통받고 있는데도, 어려운 경제적 사정으로 제대로 치료를 이어오지 못하고 있다’는 변호인측 주장도 반영했다.
법조계 B변호사는 “객관적 양형조건 변화 없는데 감형을 쉽게 내리는 것은 지나치다”면서 “징계도 걸려있어 중복으로 처벌 받는 듯한 점을 고려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용서 없이 돈만 줘도 감형?”=피해자가 용서하지 않고 합의를 거부하는데도 법원에 돈을 맡겨놓는 ‘공탁’을 감형 요소로 반영한 사례도 눈에 띈다. 상속 재산 문제로 의견을 달리하는 친동생의 머리를 조각상으로 내려쳐 중상을 입힌 50대 친형 C씨의 경우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가 항소심에서는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C씨는 지난 2000년 7월 12일 오후 광주시 북구 자신의 부모님 아파트에서 상속 재산을 분배하는 문제로 가족 회의를 하다가 막내 동생의 정수리를 향해 6.2㎏ 상당의 테라코타 조각상을 내리친 혐의로 기소됐다. C씨 동생은 두 차례의 뇌수술을 받는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았다.
항소심까지 용서받지 못했지만 항소심 단계에서 1억원을 공탁한 점을 들어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고 판단,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당시 일각에서는 피해자 의사가 반영된 합의가 아닌, 공탁 그 자체만을 판단하는 경우라는 점에서 감경 요인에 차등을 뒀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인정·반성한다고 깎아줘?”= 광주지법 형사 3부(부장판사 김태호)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허석 순천시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형(집행유예)을 벌금형으로 낮춰 선고했다. 1심은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다.
허 시장은 2006년부터 7년간 순천 지역신문 대표로 재직하며 프리랜서 전문가와 인턴기자의 인건비 등으로 지급한 지역신문 발전기금 1억6천만원을 유용한 혐의로 기소됐다. 유·무죄 판단은 같지만 1심 재판 이후 편취한 금액을 전액 공탁한 점, ‘공무원’이라는 신분을 잃을 가능성이 반영되면서 양형 판단이 달라져 벌금형을 선고했다.
선출직 공직자의 경우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위반은 벌금 100만원 이상, 그 외 형사사건은 금고형 이상의 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당선이 무효가 되고 피선거권도 제한받는다. 같은 재판부는 앞서 서대석 서구청장도 집행유예를 벌금형으로 낮춰 선고한 바 있다.
서대석 광주 서구청장은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지만 항소심에서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000만원을 선고받아 직을 유지했었다.항소심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는 점이 달라진 점이다.
서 구청장은 지난 2015년 9∼12월 광주환경공단이 발주한 하수처리 장치 사업에 설명회와 실험을 하게 해주겠다며 특수 재활용업체 대표로부터 800만원을 받고, 승진 인사 청탁 명목으로 시청 6급 공무원에게 2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D변호사는“국민적 관심 있는 사건들의 객관적 양형조건이 바뀌지 않아도 감형이 되는 경향성을 띄는 건 사실”이라면서 “항소심에 들어가면 반성 태도를 보이는 점, 구속 피고인들의 경우 교도소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 등도 양형 변경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도 “정치적 요인이 판결 요소가 되면 안된다. 추가된 법리 판단이 없는데도 감형이 이뤄진다면 국민의 법감정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지을 기자 dok2000@kwangju.co.kr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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