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산업개발 17명 피해자·가족과 모두 합의, 처벌불원 탄원서 받아
재판 지연에 구속된 5명 중 4명 보석 석방…행정처분도 장기화 우려
화정 아이파크 수사도 비협조적…재발 방지 위해 제대로 된 처벌해야
17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 참사인 ‘광주시 동구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건물 붕괴사고’와 관련, 원청사인 현대산업개발에 대해 적절한 형벌과 법적 책임을 묻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당장, 현대산업개발측이 사고 참사 피해자·가족들과 모두 합의해 처벌불원 탄원서를 받아간 것으로 확인되면서 처벌 수위가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피해자와의 합의는 형사사건 판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양형요소로, 합의했다면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보고 감형 요인으로 반영해 처벌 수위가 낮아지는 게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학동 참사 재판 과정에서 일부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데다, 부실 공사로 인한 재판 진행중 후진국형 참사가 다시 일어났다는 점과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 붕괴사고에 대한 경찰 수사 과정에서도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점을 고려하면 합의가 선처로 이어지는 구조를 촘촘히 해 사회질서 유지 등 국가적 차원에서 내리는 형벌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피해자측과 합의, 처벌 수위 낮추나=10일 법조계와 동구 등에 따르면 현대산업개발은 최근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건물 붕괴사고’와 관련, 17명의 피해자 또는 가족들과 모두 합의하고 ‘처벌불원’ 탄원서를 받아냈다.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피해자측 탄원서는 대부분 감형요소로 작용해 처벌수위를 낮춘다.
현재 광주지법 형사 12부(부장판사 정지선) 재판부에 제출되지는 않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제출될 것이라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광주일보가 지난 2020년 5월 이후 1년 간 광주지법에서 진행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건 23건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합의’와 ‘처벌불원’ 탄원서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이 기간, 12명의 노동자가 숨진 사건으로 28명이 재판에 넘겨졌지만 2명만 실형을 선고받았을 뿐 나머지 피고인들은 모두 집행유예로 형 집행이 미뤄졌다. 이들의 판결문에는 모두 ‘유가족과 합의’한 점이 감형 요인으로 반영됐다. 현대산업개발 측 재판에서도 비슷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현대산업개발 측이 철거건물 붕괴사고와 관련된 부실한 안전관리 등을 소홀히 한 책임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부실한 안전관리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는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사고까지 발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과연 안전 불감증으로 빚어진 참사에 대한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법조계 안팎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재판·행정처분 장기화, 그날의 참사 잊혀지진 않을까=담당 재판부의 강행군에도 심리할 게 많다보니 재판 속도도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 재판부는 애초 2월 말 1심을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현재로는 제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법원의 정기인사 및 담당 부장판사 휴직 등으로 재판부 변경까지 이뤄지면서 올 3월 이후로도 재판이 열릴 가능성이 점쳐진다.
관련 피고인들의 1심 재판 구속기간(6개월)도 만료를 앞두면서 구속돼 재판을 받던 현산 관계자, 감리, 하도급업체 관계자 등 4명이 보석으로 석방된 상태다. 앞서, 검찰은 학동 참사와 관련, 5명을 구속해 재판에 넘겼다.
현대산업개발에 대한 행정처분도 장기화가 예상된다.
광주시 동구는 지난해 9월에 이어 지난달 서울시에 현대산업개발 측의 행정처분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동구는 17명의 사상자를 낸 원청사인 점을 들어 건설산업기본법(82조) 등을 적용해 영업정지(1년 이내), 과징금(도급금액의 30%이하 또는 5억원 이하), 과태료(2000만원 이하) 등을 서울시에 요구한 상태다.
서울시는 그러나 ▲관련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은 점 ▲하도급업체의 등록 관청(영등포구청)의 행정 처분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 등을 들어 지켜보자는 취지로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에서는 사고의 책임이 있는 건설사가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고 피해회복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할 수 있도록 재판 과정에서적극적으로 참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우식 참여자치21 사무국장은 “유족과의 합의를 책임을 면할 용도로 쓰려는 현대산업개발측 태도는 야비함의 극치”라며 “잘못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전제되는 합의가 의미가 있다.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사고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지을 기자 dok2000@kwangju.co.kr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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