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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력가에서 주역으로…히말라야가 허락한 ‘셰르파’
다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네팔 인구의 0.426%에 지나지 않지만 네팔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종족이다. 이들을 떠올릴 때면 초인적인 이미지가 연상된다.
그렇다. 셰르파족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을 히말라야 등반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력자로 생각한다. 틀리지 않다. 그것으로만 한정한다면 셰르파족에 대한 견해는 지극히 단견이다. 그동안 다양한 매체에서 셰르파족을 “강인한 도우미, 순수한 고산족” 등으로 묘사한 건 사실이다.
셰르파족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은 카트만두다. 네팔 북동부 산악이나 인근 저지대에도 적지 않다. 이들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기도 하지만 관광지에서 호텔이나 식당 관련 업종에 종사한다.
그러나 여전히 셰르파족 하면 8000미터 ‘죽음의 지대’를 오르는 등반 가이드업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에게 ‘순수한 고산족’과 ‘산악 관광의 주요 참여자’라는 두 관점이 혼재하는 건 사실이다.
셰르파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고, 인류학으로 조명한 책이 발간돼 눈길을 끈다. 저자는 전문 등반인이자 인류학 연구자인 오영훈 서울대 비교문화연구소 연구원이다. 대학 신입생부터 동아리활동을 시작한 그는 전문 등반을 제2의 전공으로 삼아 연구를 진행해왔다. 눈에 띄는 이력은 에베레스트에 4차례나 오른 전문 등반가라는 사실이다. 그는 “산을 다니며 겪는 자연, 또 함께하는 이들과 맺는 깊은 유대감은 무척 신선하고 심오한 체험”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역사의 변천은 특이한 개인들의 영웅적인 선택과 실천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중첩된 관계들 속에 역사의 우연이 연쇄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드러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히말라야 등반의 역사는 “땅과 사람의 현장성, 토착성과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는 논리다.
가장 궁금한 점은 셰르파의 기원이다. 서로 다른 엇갈린 기원들이 존재한다. 여러 자료와 기원들을 종합해보면 “정치적·사회적으로 혼란스럽던 티베트의 16세기부터 티베트인들이 남하해 솔루와 쿰부에 정착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만이 기원에 대한 증거가 된다.
셰르파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은 등반 관광산업이었다. 산악지대에 모여 살며 농사나 목축을 하던 이들에게 관광산업은 개인의 통제범위를 벗어난 분야였다. 그러나 이들은 유연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국내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또는 등반 원정대 참여, 또는 원정 관련 회사를 경영하는 일에 종사한다.
사실 네팔은 공공성과 사회복지가 미흡하다. 아니 부재한다고 보는 편이 맞다. 이 상황에서 셰르파족이 보여주는 공동체성은 변화에 대응하는 생존전략이다. 저자는 이를 “셰르파의 집단 정체성이 발휘된 결과”라고 본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등반 산업에서 셰르파 역할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단순히 포터가 가이드에 머물지 않고 직접 원정대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기업을 경영한다. 무엇보다 그들은 기존 서구 중심의 왜곡된 등반 문화를 바꾸고 있다. 더러 개인의 통제가 불가능하고 예측이 어려운 상황도 있지만, 그들은 다양한 선택지까지도 ‘살아 있게’ 만든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이렇다.
“셰르파 종족성은 ‘피’나 ‘뼈’ 등 혈통을 타고 내려오는 본질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실체 없이 사회적 관계의 역학만으로 구성되는 개념 체계인 것만도 아니다. 본질주의와 구성주의의 이분법을 벗어나, 셰르파들의 종족성의 실천에는 숱한 경로를 통해 먼 과거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관계의 역학에 있다.”
한편 책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플러스 시리즈로 나왔으며 아시아문화원이 기획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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