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하도급·비리가 부른 비극
총체적 부실에 승객 17명 사상
어느 누구도 책임 인정하려 안해
유가족들은 6개월째 멈춰진 삶
철저한 진상 규명·책임자 처벌을
‘멈춤’이 일상이 된 올해에도 광주·전남에서는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철거 건물 붕괴로 무고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고 학교폭력을 참다못한 어린 학생이 소중한 삶을 등지는가 하면, 안전 조치가 미흡한 현장실습장에서 일하던 청소년이 자신의 꿈을 피우지도 못하고 숨지는 일도 빚어졌다.
광주일보는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잊지 않기, 기억하기’ 기획물을 게재한다. 참사를 슬퍼하는 것에서 끝내는 게 아니라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기억하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19일 찾아간 광주시 동구 학동 재개발구역 철거건물 붕괴사고 현장에는 ‘학동 붕괴참사 관련자들의 철저한 수사와 엄중한 처벌을 원합니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현장은 도심 속 폐허나 다름없는 공간처럼 남겨져 있었고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참사 이후 6개월이 지났지만 현장은 사고 직후와 비교해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참사가 발생했던 현장을 둘러친 가림막이 철제로 바뀐 것 외에 공사 현장도,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의 삶도 사고날인 지난 6월 9일에 멈춰선 상태였다.
신속하게 이뤄져야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더디기만 하다.
경찰 수사가 1차적으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진상 규명은 커녕, 관련자들이 여전히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하거나 책임을 미루면서 유가족들 사이에서는 “뒷걸음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이진의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사고직후 6개월이 지났는데, 재판은 책임 떠넘기기하는 공간으로 변한 것 같다”며 “내 소중한 가족이 사라졌는데 잘못을 저지른 책임자가 없는 걸 어떻게 이해하란 말이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지난 6월 9일 광주시 동구 학동재개발 구역에서 철거중인 건물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건물은 마침 현장 옆을 지나가던 버스를 덮쳤다. 승객 17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경찰은 18명을 관련자로 입건하는 한편, 법과 원칙을 무시한 공사, 부실한 감리와 형식적 감독 등 총체적 안전 불감증으로 빚어진 인재(人災)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불법으로 건물 철거를 하도급 맡은 백솔건설은 공사비와 시간을 단축하려고 해체계획서대로 철거해야하는 원칙을 저버렸다. 공사 단가도 원청과 하청, 재하청 업체 간 재하도급이 이뤄지면서 50억원 짜리 공사가 12억원으로 후려쳐 넘겨졌고,이마저도 대폭 깎이면서 부실, 날림 공사로 이어졌다. 부실공사를 감독해야 할 감리는 현장에 단 한 차례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원청인 현대산업개발측은 불법하도급 등을 알고도 묵인한 정황이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나고 있다.
철거 공사 업체 선정 과정에서 문흥식 전 5·18구속부상자회장 등 브로커가 개입돼 수억원 대 돈을 받아 챙긴 정황도 나타나면서 재개발·재건축 복마전이라는 말도 터져나왔다.
하지만, 사고현장에서 철거작업을 하던 재하도급업체 대표, 현장 관리를 맡은 하도급 업체 직원, 하도급 업체와 이면 계약을 맺고 공사에 뛰어든 철거업체 직원, 철거공사 원청인 재개발 아파트 시공사 소속 직원, 안전 의무를 외면한 감리자와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 하도급 업체 한솔, 재도하급 업체 백솔, 선정과정에서 리베이트를 챙긴 브로커 등 어느 누구 하나도 책임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경찰은 또 건물 붕괴 사고 외 재개발·재건축 비리 등과 관련, 현대산업개발 관계자·학동 4구역 재개발조합 관계자 등 25명을 추가로 입건하고 수사를 진행중이다. 21명은 최대한 빠른 시일내 검찰로 송치할 것이며, 일부는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 10월 지역 시민단체와 정의당이 광주지역 15개 지역재개발사업장을 고발 한 것과 관련 수사가 진행중이다.
/글·사진=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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