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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기자

[고교 현장실습 바꾸자] 실습 빙자한 노동 안돼…학습권·안전 보장 대책 절실

by 광주일보 2021.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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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19세 고교생 꿈...현장실습 이젠 바꾸자 <하> 안전 실습 위한 개선 방안은]
정부 국가직무능력 교육과정 부실 운영 방치…비극의 악순환 되풀이
실습업체 발굴 등 전담기관에 맡기고 기말고사 이후 취업활동 나서야
안전 소홀 업체 엄벌하고 전국 직업계고 동시 취업기간 설정도 필요

지난 10월 10일 오후 여수시 이순신 마리나 요트 선착장 인근에서 전국 특성화고 학생들이 모여 현장 실습중에 사망한 故 홍정운 군을 기리는 팻말을 든 채 추모제를 갖고 있다. <전국특성화고노조 전남지부(준) 제공>

요트업체에서 현장실습 중 숨진 여수해양과학고 현장실습생 고(故) 홍정운(18)군 사고를 계기로 현장실습제도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 방안에 대한 각계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고 때마다 정부 당국이 대책을 내놓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비슷한 사고가 터지는 ‘사고→제도 강화→제도 완화→사고’의 악순환이 다시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현장실습생이 공부하는 학생 노동자가 아닌, ‘값싼 저연차 노동자’라는 현장 인식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내놓는 오락가락, 임시방편식 대책은 미성년 현장실습생의 또다른 희생을 불러올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장실습이 교육 목적으로 이뤄지는데도 노동행위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게 공통된 현장 목소리다.

최근 여수에서 열린 ‘직업계고의 학교교육정상화와 현장실습제도 개선 대안’ 토론회도 현장에 있는 학생·학부모·교사·교육 전문가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었던 자리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이규학 전남교육청 청렴시민감사관은 직업계고가 교육기관인지, 훈련기관인지, 현장실습이 교육인지 노동인지 오락가락했던 역대 정부의 갈팡질팡했던 직업계고 정책을 꼬집었다.

교육기관이 아닌,직업훈련기관으로 취급하면서 현장실습도 교육 목적의 학습보다 저임금 노동력 제공방안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은 채 5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는 게 이 감사관 지적이다.

 
특히 정부가 현장에서 필요한 직무능력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도록 NCS(국가직무능력표준) 학습 모듈을 통한 교육 과정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현장실습으로 NCS 교육과정이 부실하게 운영되는 것을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감사관은 전국 직업계고를 대상으로 ‘동시 취업기간’을 설정, 이 때에만 취업 활동을 하도록 하고 나머지 기간은 정상적 학교 수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동부가 직속으로 ‘고졸 취업 지원센터’를 마련, 전국 취업 희망 업체를 발굴하고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정훈 진성여고 교사는 현장실습 업체 발굴, 취업 업무를 교사가 아닌, 전담기관에게 맡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습생 안전을 취우선하는 양질의 실습처를 발굴, 학교에 전달하는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성적 우수 학생 위주로 이뤄지는 취업 교육도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이뤄져야 하고 현장실습 전담 전문 취업 지도사 배치도 시급하다는 게 이 교사 지적이다. 이 교사도 “특성화고 학생들의 수업권 보장을 위해 학기말 고사 이후로 모든 취업 관련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故) 이민호군 아버지로 노동 안전과 현장실습 정상화를 위한 제주네트워크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상영씨는 “3학년 2학기 10월부터 현장에 나간 학생의 경우 졸업 후 채용까지 약 5개월 간 학습을 빙자한 노동력을 제공한다”면서 “학생들의 학습권과 직업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취업에 대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에 대한 노동교육도 필요하다.

처음으로 낯선 현장에 투입된 청소년들이 노동 현장에서 불합리한 일을 당했을 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권리와 의무에 대한 교육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안전한 현장실습 현장을 만들어 달라는 공통된 목소리를 냈다.

여수해양과학고 최성현군은 “취업을 하기 전 현장에 대해 알고 직접 경험해보는 일은 소중한 기회”라며 “어려운 것을 바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습권과 안전이 보장 된 실습 현장으로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안전이 뒷전으로 밀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업체 선정 뿐 아니라 안전 조치를 소홀히 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엄벌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전조치가 부실한 현장에서 일하다 스러져간 현장실습생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기억하는 것도 유사 사고 재발을 막고 현장 인식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는 게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데 중요하다는 것이다.

고(故) 홍정운 군 친구들은 지난 24일 홍군의 49재를 맞아 ‘밤하늘의 별’ 등의 추모곡 2곡을 발표했다.

“밤하늘의 별을 따서 너에게 줄래, 너는 내가 사랑하니까 더 소중하니까. 많고많은 친구중에 너를 만나서 행복했어 정말.”

친구들은 이같은 노랫말을 담은 추모곡을 온라인과 SNS, 유튜브에 올리고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안타까운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기원하고 있다. 추모곡 발표에 참여한 ‘학교부터노동교육운동본부’는 제작과정도 동영상으로 제작, 선보였다.

학교부터노동교육운동본부 관계자는 “홍군의 죽음이 헛되이 하지 않도록 기억하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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