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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기자

5·18 후유증에 평생 극심한 고통 시달리다 안타까운 죽음

by 광주일보 2021.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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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이 쏜 총탄에 척추 다쳐 하반신 마비

24일 오후께 광주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광영씨의 빈소. 영정사진 속 이씨는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형님의 인생은 1980년 5월 18일 송두리째 바뀌었습니다. 그날 입은 총상으로 평생을 장애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24일 오후 2시께 찾은 광주시 북구 우산동 구호전 장례식장. 5·18 유공자 이광영(68)씨 빈소에서 만난 유가족들 표정엔 비통함이 가득했다.

이씨는 지난 23일 강진군 군동면 한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는 지난 22일 오후 4시께 자택인 전북 익산시를 떠나 밤 11시15분께 저수지 인근에 도착한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이곳은 이씨가 10대 유년시절을 보낸 곳으로, 고향에서 마지막 생을 마감했다.

이씨가 자택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나의 사랑하는 가족에게’라는 제목의 A4 한장 짜리 유서에는 ‘최근 허리 통증이 심해져서 힘들고 괴롭다. 5·18에 대한 원한, 서운함을 모두 잊겠다. 가족에게 고맙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이씨의 남동생은 전했다.

이씨는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이자, 부상자회 회원으로 5·18 당시 조계종의 한 사찰 승려였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앞두고 광주에 왔다가 계엄군의 진압이 시작되면서 계엄군의 총칼에 쓰러진 환자 이송에 동참했다. 이씨 또한 계엄군이 쏜 총탄에 맞아 척추를 다쳐 하반신이 마비된 상태로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야 했다.

5·18로 삶이 바뀐 이씨는 진실을 알리는 데 적극적이었다. 그는 헬기 사격을 직접 증언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는 1988년 국회 광주 특위 청문회와 1995년 검찰 조사, 2019년 5월 13일 전두환 사자명예훼손 혐의 1심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1980년 5월 21일 오후 광주시 남구 월산동 로터리에서 백운동 고개 쪽으로 차를 타고 가다가 헬기 사격을 직접 목격했으며 헬기 사격으로 어깨에 관통상을 입은 여학생을 구조해 적십자병원으로 이송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5·18로 인한 후유증은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이씨 남동생은 “형님은 최근 통증이 심해져 병원 중환자실에서 두 차례나 기절했었고 이렇게 더 못하겠다는 말을 했다”며 “형님이 차량을 맡겨놓은 정비소에서 차를 타고 나갔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걱정이 돼 전화를 계속 했는데 받지 않았다. 불안한 생각이 들어 집에 갔는데, 유서를 놓고 가셨다. 급히 찾아 나섰지만 이렇게 됐다”면서 말끝을 흐렸다.

이씨는 이달 초에도 5·18부상자회 사무실을 찾아 정신적 손해배상 소송 청구를 위한 서류를 챙겨 갔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글·사진=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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