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의 정신 깃든 대흥사부터
부처님 진신사리 모신 통도사
백제의 역사 품은 마곡사까지
고유의 콘텐츠와 브랜드 갖춰
한국의 산사 7곳이 세계유산이 된 것은 지난 2018년 6월이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에 대해 7~9세기 창건 이후 현재까지 지속성, 한국 불교 역사성 등이 세계유산 등재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기준’에 해당한다고 평가했다.
대흥사와 선암사 외에도 통도사(경남 양산), 부석사(경북 영주), 봉정사(경북 안동), 법주사(충북 보은), 마곡사(충남 공주) 등 모두 7개 사찰이 포함됐다. 이에 앞서 지난 1995년 경주 불국사·석굴암을 비롯해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이 먼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은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상징한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세계문화유산 한국의 산사를 가다’ 시리즈는 우리나라 전통의 삶 속에 스며 있는 사찰 문화를 조명하는 시간이었다. 사찰은 1000년, 1500년이 넘는 시간 원형을 간직하면서도 역사와 문화, 삶이 연계된 공간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시리즈에서 다뤘던 절들은 모두 유구한 역사를 지닌 고장에 자리했다. 해남과 순천을 비롯해, 양산, 영주, 안동, 보은, 공주, 경주, 합천은 문화자원의 관점에서 특별한 지역이다.
해남 대흥사는 서산대사(1520~1604)와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서산대사는 이곳 대흥사 자리를 ‘삼재가 들어오지 않고 만세토록 파괴되지 않는’ 곳이라고 명명했다. 서산대사는 73세 노구에도 불구하고 구국을 위한 참전에 나섰고, 그러한 정신은 오늘날까지 대흥사 곳곳에 남아 호국의 성지에 값하는 가치를 발한다.
대흥사에는 서산대사 의발이 보관돼 있다. 지난 2014년 4월 대흥사 경내에서 봉행된 ‘탄신 제 492주년 호국대성사 서산대제’는 신도 등 3000여 명이 동참해 서산대사의 충혼을 되새겼다.
양산 통도사(通度寺는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조계종 ‘종가’와 같은 절이다. ‘통(通). 도(度). 사(寺). 이치를 통하였다’, 라는 말인데 스스로 어떠한 정도나 한도를 안다는 것일 터다.
통도사는 646년 신라 선덕여왕 15년에 자장 율사가 창건했다 전해온다. 부처님을 상징하는 불보사찰로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 이곳의 가람 배치는 여느 절과는 다른 구성을 보인다. 하로전, 중로전, 상로전의 3원이 그것으로 향로를 의미하는 로(爐)는 부처 공양과 관련이 있다.
법주사는 속리산 품에 있다. ‘속세에서 멀리 있다’는 뜻의 속리(俗離)는 세속과 거리를 두고자 하는 이의 마음이 읽힌다.
경내에 들어서면 커다란 전나무 두 그루가 길손을 맞는다. 정밀하면서도 이색적인 풍경은 수문장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오랜 세월 모진 삭풍을 견뎠을 전나무에선 현자의 기품이 느껴진다. 또한 팔상전(국보 제55호)은 거대한 목탑을 떠올리게 한다.
전설과 연계된 ‘뜬 돌’의미가 담긴 영주 부석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화엄종의 본찰이다. 예로부터 ‘십승지지’(十勝之地) 중 첫손에 꼽힐 만큼 풍광이 뛰어난 영주는 그만큼 산세가 유려하고 청정하다.
이곳은 ‘동양건축의 최고 걸작품’이라고 평가받는 무량수전을 비롯해 팔작지붕에 맞배지붕 형식을 지닌 범종루, 정토의 의미를 지닌 안양루 등 아름다운 건축물이 산재한다. 이밖에 경내에는 국보 제17호 무량수전 앞 석등을 비롯해 국보 제19호 부석사 조사당도 만날 수 있다.
마곡사는 백제고도의 찬란한 역사를 품은 1500년 고찰이다. “설법 때 마(麻) 심어진 것처럼 인파 몰려”, 마곡사라는 사찰의 명칭 유래됐으며 보물 대광명전·대웅보전·5층석탑 등 유물이 있다.
통일신라 도선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추정되며, 신선들의 바둑 두던 바위 ‘선암’에서 유래한 순천 선암사는 남도의 대표 사찰 가운데 하나다. 아치형 다리 승선교 조형미는 무엇에 비할 바 없는 일품이다. 가람 배치 구조는 시골의 골목 같은 느낌을 준다. 전각을 에우른 돌담과 길은 각기 독립적이면서도 서로를 아우른다. 유서 깊은 시골 마을 풍경을 고스란히 옮겨온 듯하다.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은 안동 봉정사는 위엄과 기품, 고풍의 아우라를 발한다. 고즈넉함과 지고지순의 미가 절집에 가득하여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곳이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최고 목조건축물 극락전(국보 제15호)이 있다. 지난 1972년 극락전 복원 중 상량문에서 ‘1363년 고려 공민왕 12년 극락전 옥개부를 중수했다’는 기록이 나온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건립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밖에 ‘본 마음의 깨끗함’이라는 뜻을 담은 해인사는 국립공원 가야에 있다. 이곳에는 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 보관돼 있는데 고려 고종 때 16년에 걸쳐 완성됐다. 당대의 혼란과 국난을 이겨내고자 했던 이들의 발원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나라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다.
751~774년 이후까지 중창된 경주 불국사와 석굴암은 김대성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한 창건설화가 전해온다. 불국사와 석굴암이 동시에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것은, 같은 경내에 있지 않지만 하나의 사찰로 본다는 의미다. 창건설화도 그렇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와 가치는 세계유산에 값할 만큼 귀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사찰은 한국 불교가 지닌 독특함, 융합성, 전통성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아울러 사찰마다 고유한 콘텐츠와 브랜드를 지니고 있어 지역 문화자산으로도 손색이 없다. 향후 템플스테이를 비롯해 다양한 강좌와 다채로운 프로그램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중요한 콘텐츠로 계승, 발전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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