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제3세계 작가 수상
‘떠남의 기억’ ‘낙원’ ‘바닷가’ 등
인종차별적 망명생활 경험 작품 다뤄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탄자니아 출신 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73)는 식민주의와 난민 경험에 천착한 작품을 써온 소설가다.
코로나 팬데믹과 아프가니스탄 사태 등으로 촉발된 난민 문제는 오늘날 지구촌이 당면한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다. “박해, 전쟁, 테러, 극도의 빈곤, 기근, 자연재해를 피해 다른 나라로 망명한 사람”을 일컬어 난민이라고 한다. 인류가 직면한 이 같은 난민 문제는 누구도 예외일 수 없을 만큼 확산하는 추세다.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7일 “식민주의 문제와 난민 운명에 대해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애정어린 시선을 작품에 투영한 것”을 선정 이유로 설명했다. 또한 그의 소설은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적으로 다양한 동아프리카에 대해 시야를 넓혀준다”고 덧붙였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제 3세계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이 주어진 것은 지난 2012년 중국 작가 모옌 이후 9년만이다. 최근 수년간 북미와 유럽의 문인들에게 노벨상이 돌아간 만큼 이번에는 제 3세계 작가의 수상이 유력한 것으로 관측됐었다. 구르나는 아프리카 난민 출신으로는 역대 5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아프리카계 흑인 작가로는 1986년 나이지리아 출신 월레 소잉키카 이후 35년 만에 처음이다.
1948년 아프리카 동해안 섬인 잔지바르에서 태어난 구르나는 어린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이후 영국의 식민 통치가 끝난 1963년 잔지바르에서 혁명이 일어났으며, 당시 구르나가 속한 민족은 대량학살과 박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르나는 1960년대 말 영국에 난민 자격으로 도착했으며 아버지가 사망하기 직전인 1984년에야 잔지바르로 돌아갈 수 있었다.
21세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그에게 영어는 문학적 도구가 됐다. 난민으로서의 체험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로 수렴된다. 모두 10편의 장편과 다수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난민’, ‘혼란’과 같은 주제가 소설의 기저에 드리워져 있다.
구르나는 1987년 데뷔작 ‘떠남의 기억’을 출간한다. 아프리카 재능 있는 젊은 주인공의 삶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1988년 ‘순례자의 길’은 영국의 인종차별주의적인 모습 등 망명생활에서 겪은 다양한 경험을 그렸다. 이후 ‘낙원’, ‘바닷가’, ‘탈주’, ‘사후의 삶’ 등을 발표했는데 대부분 작품은 난민의 삶과 고통 등이 관통한다.
그러나 난민 경험을 다루면서도 그는 정체성과 자아에 대한 관점을 외면하지 않았다. 문화와 문화, 이전의 삶과 새롭게 대두되는 삶 가운데서 그는 불안정한 상태를 응시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특히 구르나가 1994년 발표한 네 번째 소설 ‘낙원’은 작가로서의 역량을 입증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는 이 소설에서 19세기 후반 동아프리카의 식민지화에 대해 폭력과 광기 등을 핍진하게 묘사했다.
구르나는 수상 직후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에서 “위대한 작가들이 거쳐간 큰 상을 받게 돼서 영광”이라며 기쁨과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한편 그는 수상 통보 전화에서 ‘보이스 피싱’으로 착각해 전화를 끊을 뻔 했다는 에피소드를 전해 화제가 됐다. “보이스피싱 전화인 줄 알고 ‘이봐, 썩 꺼지지 못해? 날 내버려 둬’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으려 했다”는 것이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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