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명에게 80억 가로챈 40대…항소심서도 징역 9년 선고
재력가 행세를 하며 피해자들에게 수십억원을 받아 가로챈 40대 사기꾼이 항소심에서도 징역 9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순천에서 렌트카 사업을 하는데 빌려주면 원금을 보장하고 투자 수익금을 주겠다”, “구미 공장에 투자하려는데 1억원을 빌려주면 이자는 월 10%로 주고 매월 1000만원을 주겠다”, “사업 자금이 필요한데 카드론 대출 받아주면 원금, 이자 주겠다”, “오피스텔 구입하는데 자금이 필요하다. 돈을 빌려주면 6개월 뒤 원금을 갚고 매월 100만원 상당의 이자를 주겠다.”
뻔한 사기 수법임에도, 11명의 피해자는 전혀 의심하지 않고 A씨에게 거액을 건넸다. 피해액만 80억원이 넘는다. 피해자들이 A(46)씨와 연인 관계라거나 친구, 동창, 직장동료, 가족 등 인맥으로 얽혀 있는 사이도 아닌, 생판 모르는 ‘남’인데도 이런 범행을 당했다.
연예인급 외모 수준은 아니지만 깔끔한 외모에 ‘스윗한’ 언변과 자상함이 한몫을 했다. 수사를 맡았던 경찰도 “나도 속아서 돈을 건넬 것 같았다”고 했다. 1심 재판부도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겉모습이나 행동, 말로부터 풍기는 선량한 이미지를 갖고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기술이 탁월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A씨가 자신의 풍모를 좋은 일에 쓴다면 모르지만 남을 속여 재산을 편취하는 데 활용할 경우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할 위험이 매우 크다”고도 지적했다.
A씨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피해 여성들을 ‘이모’라 부르며 매너 좋고 달콤한 말솜씨로 챙겨주는 자상한 남자로 자신을 포장했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여성 뿐 아니라 남성들도 그런 A씨에게 아무런 의심 없이 마음을 열었다. 피해자들이 친한 동료·친구에게 A씨를 ‘친절한 조카’로 소개하면서 피해자 수도 늘었다. 이렇게 A씨에게 속아 거액을 건넨 피해자만 11명.
A씨는 광주시 광산구 원룸 임대차 계약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된 ‘이모’ B씨의 마음을 사로잡은 뒤 11회에 걸쳐 13억5000여만원을 받아챙겼다. A씨는 틈틈이 안부 전화를 하며 B씨 환심을 샀고 조카 행세를 할 정도로 친밀해졌다. 이후 B씨에게 대학교수인 C씨를 소개받은 뒤 40여차례에 걸쳐 공장 투자금 명목 등으로 28억6000만원을 뜯어갔다. C씨를 통해 알게된 C씨 직장 후배에게도 3900여만원을 챙겼고 B씨 남편에게 원룸을 산 사람들에게도 접근, 13억을 받아 가로챘다.
피해자들은 한동안 피해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고 약속한 이자나 수익금을 제 때 돌려주지 않았는데도, 추가로 빌려주기도 했다.
A씨는 들통날 것을 대비, 피해자들에게 돈의 일부를 조금씩 입금해주거나 고가의 수입차, 명품 시계, 가방, 거액의 현금 다발 등을 보여주며 피해자를 안심시켰다.
결국, 피해자들은 노후대비용 부동산 뿐 아니라 연금 자산조차 털렸다. 모든 재산을 빼앗긴 것도 모자라 거액의 자동차 할부금까지 내야 할 처지에 놓이기도 했다. A씨가 월세로 계약한 아파트를 ‘대물변제 받은 것’이라고 속인 뒤 “이 아파트를 줄테니 살던 아파트를 전세로 내놓으라”며 전세금도 빼내 월세 아파트에서조차 쫓겨날 형편에 놓인 피해자도 생겼다.
사회 초년생인 피해자들은 대출금을 갚지 못해 개인 회생중이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들 처지를 양형기준상 가중요소인 ‘피해자에게 심각한 피해를 야기한 경우’라는 건조한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했다.
1심 재판부는 “A씨를 장기간 사회로부터 격리, 거짓말에 농락당한 피해자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징역 9년의 실형을 선고했었다. 항소심 재판부인 광주고법 형사 1부도 “1심 형이 너무 무겁다”는 A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김지을 기자 dok2000@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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