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최초 육교 ‘중앙육교’ 설치부터 철거까지
초등학교 여학생 뺑소니 사고 사망 계기 1969년 기획기사로 보도
시민 성금 답지 그해 9월 준공…광주·전남 학교앞 육교 건립 확대
7일 철거 소식에 주민들 ‘섭섭’…“육교 역사 담은 표지석 세웠으면”
“사랑의 육교(1969년 당시 중앙육교의 이름), 잊지 않을 겁니다.”
50여년 전인 1969년 7월 6일, 광주일보는 ‘학교 앞에 육교를’이라는 기획기사를 보도했다. 전년도 광주·전남(제주 포함) 1~5월 교통사고 사망자가 무려 77명에 달한다는 당시 전남경찰(전남도경) 통계를 인용하며 육교 건립의 시급성을 주장한 캠페인 기사였다. 1년 간 교통사고 부상자가 658명에 달했고 특히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도 39명(부상자 85명)에 이르렀다고 했었다.
1969년 5개월(1~5월) 간 교통사고 사망자는 무려 106명에 달했고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는 35명으로 감소했지만 부상자는 오히려 71.76%(146명) 증가했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3개월 전인 1969년 4월, 중앙초교 앞에서 뺑소니 교통사고로 초등학교 여학생이 숨진 것을 계기로 시작한 기획물이었다.
광주일보는 사망사고 이후 6차례에 걸쳐 대대적으로 ‘교통사고 줄이기 캠페인’ 기사를 게재했다. 이후 곧바로 보행자 육교를 조성, 어린이들의 등·하교 길의 안전을 지키자는 ‘학교앞 육교를 세워주자’는 캠페인에 들어갔다. 당시 광주에는 육교가 없었다.
1969년 7월 6일 광주일보에 보도된 ‘학교 앞에 육교를’이라는 기획기사(위)를 시작으로 어린이들의 안전한 보행환경을 위한 광주지역 각계각층의 성금이 모여, 같은 해 9월 18일 중앙초등학교 인근에 광주 최초로 육교가 세워졌다. <광주일보 자료>
이같은 지역민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1969년 9월 18일 중앙육교가 세워졌다.
광주에 제일 먼저 세워진 1호 육교로, 시민들이 모금해 건립 비용을 댔다.
당시 81만 3785원이 모였다. 광주일보와 기자 등의 성금(5만원)을 시작으로 광주대성국민학교 화랑회(1143원), 광주중앙국민학교 유근경씨(727원), 향토사단(2만원), 호남전기㈜(50만원), 광주양동국민학교 (1만원), 제일자금㈜(5000원), 전남도교육감(1만원), 전남도 교위일동(2만3000원), 광주 중앙국민학교 (1115원), 광주국세청·광주세무서·서광주세무서·남광주세무서 직원일동(10만원), 전남여자중·고(1만6625원), 광주사법서사회·동광주지부(1만원), 전남도교육위원(2만원), 전남도 화물차운송사업조합(1만원), 광주수창국민학교(1275원), 한국자동차보험 광주지부 손건주씨(2만원) 등의 이름으로 성금이 모였다. 이 성금을 기반으로 1969년 8월 2일, 광주중앙초교에서 1000명이 모인 가운데 기공식이 열렸다.
성금에 시·도 예산을 더해 중앙초와 양동초 앞 2곳에 707만원의 공사비로 육교 건립이 시작됐다. 공사 기간은 9월 초 새학기 시작 전인 8월 31일까지로 했지만 최초의 육교 공사라 기간이 다소 늦춰지면서 1969년 9월 18일에야 준공식이 열렸고 하루 뒤인 19일 양동초 앞 육교도 준공됐다.
중앙육교를 시작으로 학교 앞 육교는 크게 늘었다. 1970년 4월 수창초, 같은 해 5월 계림초 앞 육교 기공식이 잇따랐고 이후 전남지역으로 확대돼 목포 산정초 앞에도 육교가 들어섰다.
그로부터 52년 뒤인 올해 8월 7일, 육교는 사라진다. 광주시 동구 궁동~장동을 연결해 초등학교를 오가던 어린이들의 안전을 챙겨주던 역할을 끝내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철거는 7일 밤 11시 30분부터 8일 새벽 5시 30분까지 진행된다. 이 시간, 동구 한미쇼핑 사거리에서 장동로타리까지 차량 통행이 제한된다.
당시 중앙육교 건립 과정을 기억하고 있는 지역민들은 철거 소식을 접한 뒤 섭섭하다는 반응을 드러내기도 했다.
육교 인근에서 가게를 운영해온 백상규는 “광주 최초의 육교로, 50여년을 같은 자리에 있던 육교가 없어진다니 서운하다”면서 “육교가 없어지고 횡단보도가 생기겠지만 육교 역사를 담은 표지석이라도 남아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1969년 당시 중앙초 6학년이었다는 김동수(63·광주시 서구 치평동)씨는 “육교라는 걸 본적도 없었는데, 갑자기 학교 앞에 생겨 이렇게 불편한 걸 왜 만들어 이용하게 하느냐며 친구들 사이에서 불만이 많았다. 그래도 육교 덕택에 52년 간 중앙초교 후배들과 지역민들이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었지 않느냐”며 “사라진다고 하니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 광주에 남아있는 보행자 육교는 중앙육교를 포함, 69개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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