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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기자

[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 시대 불문 상속은 ‘쩐의 전쟁’

by 광주일보 2021.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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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내현 지음

때는 16세기 조선의 어느 양반가. 장남이었던 유유가 가출을 하고 부친 유예원이 사망한다. 동생 유연이 형 대신 집안의 대소사를 주관하며 살았다. 그러던 중 형의 소식이 전해지는데, 자형 이지가 해주에 사는 채응규가 유유라고 알려온다. 얼마 후 나타난 유유에게는 춘수라는 첩과 정백이라는 아들이 딸려 있었다. 

문제는 그동안 얼굴과 몸매가 달라진 유유의 진위 여부였다. 동생 유연은 돌아온 형이 진짜 형인지 믿을 수 없었던데 반해 자형은 유유가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은 사실 재산 상속과 연관된 예민한 문제였다. 유유의 부인 백씨 부인도 정백을 자신의 아들로 거둬들인다. 그러나 얼마 후 재판을 받던 채흥규가 실종되면서, 유연은 형 살인혐의로 의금부로 압송된다. 유연은 고문과 자백 속에 능지처참의 비극적 종말을 맞는다.

조선시대에나 오늘날에도 상속문제는 관심거리다. 당대의 욕망과 갈등, 관습과 제도가 응축돼 있는 부분이 바로 상속이다. ‘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은 오늘의 상속 갈등을 조선 상속제 변화와 유럽과의 비교를 통해 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권내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로 그동안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 등의 책을 통해 역사 이면에 숨겨 있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알려왔다.

앞서 소개된 유유 사건은 이항복이 ‘유연전’이라는 기록으로 남겼다. 권득기의 ‘이생송원록’ 등을 비롯해 많은 관료와 지식인의 책에도 남아 있다.

권내현 교수는 이번 책을 통해 16세기 일상과 욕망, 관행과 제도, 사법과 정치 현실까지 아우른다. 책을 더 읽다보면 소설보다 더 극적인 실화와 만난다. 

동생 유연이 처형된 지 16년이 흐른 후 진짜 유유가 나타난다. 유연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가짜 유유 행세를 했던 채응규는 압송도중 자결하고, 채응규의 첩이었던 춘수는 이지의 사주를 자백한다. 결국 이지 또한 심문과정에서 죽음을 맞는다. 진짜 유유는 부친의 상장례에 참여하지 않은 죄목으로 100대 장형과 강제노역인 도형(徒刑)을 채우고 2년 만에 죽었다.

저자는 이 사건을 16세기 상속의 관습과 제도가 충돌한 지점으로 본다. 당시 관습은 장남이 자식 없이 죽으면 부인이 총부로서 재산을 관리하고 가계 계승자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이른바 ‘총부권’이었다. 이와 달리 법전 규정에는 그 권리를 장남의 남동생에게 부여하는 ‘형망제급’이 있었다. 일종의 관습과 제도의 충돌인데, 이 시기는 가계 계승자에게 상속 몫이 늘어가는 추세였다.

사람들은 처음에 유연이 ‘적통을 빼앗으려’ 형을 죽였다고 봤다. 어찌됐든 부인 백씨가 채응규 진위를 가리지 않고 아들 정백까지 키운 것은 상속과 가계계승에서 불안한 자신의 처지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연 사건의 배경은 17세기 이후에는 낯선 일이었다. 아들이 없이 죽었다면 양자를 들여 가계를 이었을 것이고, 그런 상황이라면 유유, 유연, 부인 백씨는 가계 계승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장자 우대 상속은 상속 재산의 축소(경제력)와 종법(이념)의 확산 두 가지와 맞물려 있었다. 장남을 우대하는 관행은 근대 이후에도 오래 지속됐다. 물론 차남들도 일정 부분 상속을 받고 장남 주변에 머물러 살았다. 저자는 이와 같은 적장자 우대 상속은 장남에 의한 가계 계승을 보장하면서 나머지 아들들의 경제적 몰락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개별 가계의 성장과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약화로 다시 균분상속으로 전환됐다. 상속의 갈등을 겪는 집안도 있지만 장남 우대 상속은 조만간 역사 뒤안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유럽이 장자 상속제로 인해 부가 집중되고 경제 성장의 발판이 됐다는 견해는 유럽 중심주의라 일축한다. 유럽 귀족은 11~12세기를 거치며 장자 상속제를 채택했는데, 다른 아들들에는 매우 가혹한 제도였다. <너머북스·2만3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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