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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기자

[르네상스 미술 그 찬란함과 이면] 광채에 가려진 르네상스의 어둠

by 광주일보 2021.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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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시나 슈지 지음, 이연식 옮김

르네상스 화려한 작품 이면에는 ‘규율’로 대변되는 중세시대 특징이 혼재돼 있다. 사진은 티치아노의 ‘성애와 속애’.

일반적인 르네상스에 대한 정의는 이렇다. 신 중심의 세계에서 인간 중심 세계로 관점이 이동했다는 것. 다시 말해 ‘암흑의 시대’에서 자각의 시대로 초점이 옮겨졌는데 신이 중심이던 때는 현실을 도외시했다. 교회의 도그마는 눈앞의 세상에 대한 생생한 현상을 애써 눈감게 했다.

역사가 이폴리트 아돌트 펜은 ‘이탈리아 기행’에서 15세기 피렌체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매력이 넘치는 시대, 영혼의 청춘이 숨 쉬는 찬란한 여명, 사람들은 그때 처음으로 현실 속의 사물에 깃든 시정(詩情)을 발견했다. 이 시대에는 그저 하나의 묘선에도 감동의 떨림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르네상스 시기에는 밝음만 있었을까? 개인의 서정과 현실에 대한 역동적 인식만 있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모든 시대는 그 이전 시대와 길항의 관계를 이룬다. 르네상스에도 여전히 중세적인 분위기가 당대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다.


화려했던 르네상스 이면을 조명한 ‘르네상스 미술 그 찬란함과 이면’은 중세에 발을 걸치고 르네상스 속살을 들여다 본 책이다. 저자인 일본 미술사하계의 수장 다카시나 슈지는 “르네상스 특유의 이상 세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동안 미술사학 지식을 대중들에게 풀어주었던 저자는 ‘일본의 곰브리치’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만큼 시각이 독특하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은 이교의 사상과 기독교 교리의 결합으로 발현된다. 저자에 따르면 피렌체에서는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를 융합하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대표적인 작품이 보티첼리의 그림에서 찾을 수 있다. ‘비너스의 탄생’과 ‘봄’은 주제와 내용 모두 난해한 특징을 지닌다. 보티첼리는 그리스 로마 신화인 비너스를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이미지에 대입했다. 메디치 가문이 지배하는 피렌체를 이상세계로 찬양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성스러운 사랑인지 세속적인 사랑인지 구분할 수 없는 티치아노의 명작 ‘성애와 속애’는 중세적인 것과 르네상스적인 것이 교묘하게 투영된 작품이다. 중세 이래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육체를 금기시했는데, 욕망을 부정한 것이나 진배없다.

티치아노의 작품에서 육체를 드러낸 알몸의 여성은 육체적 욕망 ‘속애’를 상징한다. 이와 달리 옷으로 몸을 가린 여성은 ‘성애’를 함의한다. 저자는 “어느 쪽이 ‘성애’이고 ‘속애’이든 간에 언뜻 봐도 화면의 주역인 두 여성은 쌍둥이처럼 서로 흡사한 모습이지만 한껏 대조적으로 묘사되었다”고 부연한다.

여성들은 쌍둥이처럼 닮은 데다 금속으로 된 용기를 들고 있고, 좌우의 배경도 대조적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공통점을 지녔다.

그리스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루벤스의 작품 ‘레우키포스 딸들의 약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쌍둥이 신 디오스쿠로이에게 붙잡힌 두 여성의 구도는 입체적이다. 분명 화면에는 두 명인데, 실상은 한명의 모델을 앞모습과 옆모습으로 그린 것이다.

그렇듯 르네상스 시대는 찬란한만큼 매혹적인 어둠이 혼재돼 있었다. ‘낭만’과 ‘규율’의 아슬아슬한 융합이 아니었을까.

<재승출판·2만5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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