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루소의 ‘잠든 집시’(1897)란 그림을 좋아한다. 화면 오른쪽 상단 푸르스름한 밤의 창공에 하얀 달이 떠 있다. 지평선 아래 갈색의 대지에는 집시가 악기를 옆에 둔 채로 곤하게 잠들어 있다. 잠든 집시에게 수사자 한 마리가 다가온다. 이 기이한 환각 같은 집시의 꿈을 묘사한 단순한 구도의 그림에 내 무의식은 자극을 받는다.
“비가 개인 날,/ 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내려와서/ 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녹음이 종이가 되어/ 금붕어가 시를 쓴다.”(김광섭, ‘비 개인 여름 아침’)
이 맑고 깨끗한 여름 아침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건 꿈이 아닐까? 꽃 피고 새 울며, 못 속에 금붕어가 노니는 이 평화로운 아침에 맞는 오늘이 우리가 꾸는 긴 꿈 중 일부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다.
우리는 자는 동안 최소한 다섯 번 이상의 꿈을 꾼다고 한다. 기억하는 꿈은 극히 작은 일부다. 깨어나기 직전에 꾼 꿈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수면 중 뇌에서 일어나는 일들 가운데 하나인 꿈은 ‘그림의 연쇄’로 이루어진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꿈은 뇌라는 스크린에 펼쳐지는 영화다.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 비이성이 지배하는 무의식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꿈은 논리나 맥락이 없는 이야기다. 무의식에 웅크려 있던 격정과 본능적 욕망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꿈의 재료는 낮 동안 활동할 때 겪은 경험들, 곧 ‘일화 기억’들(episodic memory)이다. 때때로 영혼에 숨은 무의식적 힘들이 생생한 현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잠들지만 뇌는 잠들지 않는다. 우리가 잠에 빠진 동안에도 뇌는 쉬지 않고 활동을 이어 간다. 수면은 기억 중추 영역인 해마에 기억을 응고시켜 고착시키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이걸 ‘기억 굳힘’이라고 한다. 꿈은 수면 중 감각기관에서 온 각종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생리학자들에 따르면, 해마는 낮에 수용한 정보를 선별하여 신피질에 있는 장기 저장소로 옮기는데, 이 과정에서 꿈이란 현상이 파생한다고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꿈이 있으니, ‘장자’ ‘제물편’에 나온다. ‘호접지몽’으로 널리 알려진 이 꿈에 따르면, 장주(莊周)는 낮잠을 자면서 꿈을 꾼다. 장주가 범나비로 변해 꽃 위를 날아다니는 꿈이다. 나비가 되어 꽃향기에 취한 장주는 즐겁고 행복했다. 장주는 불현듯 꿈에서 깨어난다. 장주는 한동안 자신이 나비 꿈을 꾼 것인지, 혹은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꾸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주는 꿈의 순간과 생시의 경계가 희미한 몽롱함 속에 머물렀다. 장주와 나비는 엄연히 다른데, 장주는 이 제의적 꿈을 통해 자아와 외물은 본디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쓴다.
꿈의 태반은 개꿈이다. 하지만 특별한 꿈도 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꾸는 꿈이 태몽이다. 많은 이들이 태몽을 예지몽으로 받아들인다. 과연 꿈에 미래에 대한 예지력이 있을까? 조선 선비 정철(1536~1593)은 꿈의 예지력에 관한 신통한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대동야승’에 기록되어 있다. 그의 인생에서 꿈과 현실이 들어맞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신묘년의 꿈에 강계부사가 되더니 곧 강계로 귀양살이를 갔다. 위리안치 중에 아들이 장원 급제하는 꿈을 꾸었더니 얼마 안 되어 문과인 용방(龍榜)의 선발에 뽑혔다. 이렇듯 꿈과 현실이 부합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는 것이다.
요즘엔 돌아가신 지 오래인 어머니와 어린 시절 옛집이 등장하는 꿈을 자주 꾼다. 좋은 꿈도 나쁜 꿈도 아니다. 아침에 허망하기 짝이 없는 그 요령부득의 꿈을 곱씹어 본다. 왜 나이가 들면서 더 자주 꿈을 꾸는 것일까? 숙면 주기가 짧아진 탓에 더 많은 꿈을 기억하는 탓이다. 살기가 팍팍하고 괴로운 순간 이게 꿈이었으면 할 때도 있다.
그 반대로 달콤한 꿈을 꾸는 동안은 이게 생시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살다 보면 꿈이 생시 같고, 생시가 꿈 같은 찰나를 겪는다. 이상(李箱, 1910~1937)의 말대로,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인 게 인생이다. 우리는 꿈으로 또 다른 생을 얻는다. 꿈은 우리가 현실에서 겪을 수 없는 이면의 삶으로 안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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