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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담긴 세상

진실과 화해로 가는 길 - 정근식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by 광주일보 2021.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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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한국전쟁 전후에 발생한 민간인 희생과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의 진상을 규명하는 작업을 다시 시작하였다.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2006년 1년간 신청을 받고 진실 규명 작업을 한 지 15년 만에 다시 한국 현대사의 어둡고 아픈 부분을 드러내 치유하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이번 진실화해위원회는 제1기의 성과를 계승하면서 미진했던 사건들을 처리하고, 또 인권 의식의 고양과 함께 새로 제기된 문제들을 처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작년 12월 10일 진실 규명 신청 첫날, 한 피해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말했다. “멀고 먼 길을 돌아 결국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들에게 진실 규명 신청은 말하지 못했던 고통과 강요된 침묵을 깨는 것이어서 많은 용기가 필요한 실존적 결단이기도 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약 7000명의 피해자들이 4000건 정도의 진실 규명 신청을 하였다. 가장 많은 신청은 역시 한국전쟁 직전에 그리고 전쟁 중에 국가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들이다. 여기에는 보도연맹 관련자, 형무소 재소자, 부역 혐의자, 폭격 피해자 등이 포함된다. 적대 세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로 전체 희생자의 15~20%로 추산되며, 납북자나 미송환 포로 등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권위주의하에서 발생했던 인권 침해 사건들도 다시 위원회에서 다루어야 한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사 정부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자행된 이념적 탄압과 서산개척단과 같은 노동력 강제 동원, 독재정권 하의 다양한 간첩 조작, 삼청교육대나 강제 징집과 같은 5·18 직후 자행한 국가폭력, 1980년대 민주화운동 고조기에 행해진 의문사 사건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번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새롭게 다뤄야 할 문제는 사회사업이나 복지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수용시설에서의 인권 침해 문제이다. 부산의 형제복지원이나 안산의 선감학원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말 그대로 한국 사회의 높아진 인권 감수성과 피해 당사자들의 자각에 의해 문제가 부각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을 피해 생존자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곧 이들이 생사의 기로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로 형제복지원에서 500여 명, 선감학원에서 수백 명의 사망자들이 확인되고 있다. 부랑자 일소와 거리 정화는 국가 공권력의 오용과 남용을 수반했다. 수용시설에서의 아동 인권 침해는 2000년 이후 유럽이나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새롭게 부상한 문제이기도 하다.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의 진실을 밝히는 책임은 당연히 국가에 있다. 독재 정부가 국가 폭력의 주체였다면 민주 정부는 진실 규명의 주체라고 할 수 있다. 국가는 진실이 일시적으로 은폐될 수 있지만 영원히 덮을 수는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자신의 권위를 되찾게 된다.

진실은 책임의 문제를 수반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처벌로 가는 길보다 사과와 용서의 길을 지향한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화해와 사회적 통합을 달성할 수 있을까를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화해는 사회적 타자로 규정되어 죽임을 당한 이들에 대한 명예 회복과 사죄, 그리고 배·보상을 통해 이루어진다.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진실이 규명된 희생자의 일부는 소송을 통해 배·보상을 받았지만, 진실 규명 신청을 하지 못했거나 진실 규명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소송 기회를 놓친 유족들도 많다. 일부 피해자들은 국가 공권력에 의한 피해가 아니라는 이유로 소송이 기각되기도 했다.

이제 세계는 이념적 양극화의 시대를 건너 사회적 양극화의 시대로 가고 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다양한 방안들을 모색해야 하며, 이런 노력들은 과거사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이념적 타자로 간주되었던 피해자와 유족뿐만 아니라 인권 침해의 피해자들이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이행기 정의의 출발점이다. 철저한 진실 규명과 화해의 관점을 견지하는 것이 이번 진실화해위원회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점을 말씀드린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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