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희 지음
‘대동여지도’는 우리나라 지도의 대명사이자 김정호라는 한 인간의 지도에 대한 집념이 투영된 문화재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대동여지도를 책으로 접한다.(모두 22권 접는 책으로 구성돼 있다) 실제 크기는 가로 3.8m, 세로 6.7m다.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실 진열장에는 대동여지도 영인본 일부와 목판 원본이 전시돼 있다. 전체를 전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를 통해 지도의 전체 크기를 유추하고 상상할 수 있다.
박찬희 박물관연구소 소장은 어느 날 실제 크기를 보고 싶었다. 영인본을 실물 크기에 맞춰 복사하고 두꺼운 종이에 덧붙인 뒤 이 종이를 이어 붙였다. 그런 과정을 거쳐 대동여지도 전체를 만들었다. 하나의 지도를 뛰어넘는 거대한 예술 작품이 펼쳐졌다.
“국토는 웅장했고 땅에는 힘찬 기운이 서렸다.(중략) 상상 이상으로 큰 규모, 섬세한 세부, 각각의 퍼즐이 이어져 만들어진 하나의 국토에 놀랐다.”
박물관 연구자이자 이야기꾼인 박 소장은 전국의 박물관과 유적을 찾아다니며 유물과 사람을 만난다. 호림박물관에서 학예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도자기와 금속공예와 관한 전시를 20차례 준비했다.
이번에 펴낸 책 ‘박물관의 최전선’은 차원이 다른 박물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동안 저자는 ‘구석구석 박물관’, ‘몽골기행’ 등을 통해 유물에 관한 내용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소개했었다.
한가지 이색적인 사례를 소개하자면, 오랫동안 금관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사람들은 신라의 왕관을 머리에 쓴 것으로 알고 있고 또 그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저자는 이한상 선생의 연구(‘황금장신구를 통해 본 신라와 신라인’)를 빌어 금관을 머리에 쓴 게 아니라 ‘죽은 자의 얼굴에 씌운 마스크’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황남대총 북분의 금관(국보 191호)을 보면 아랫부분이 머리가 아닌 목 부분에 있었다.
저자의 호기심은 그 지점에서 발동했다. 직접 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종이관을 만들어 얼굴에 씌워보고 싶었다. 상상의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그럴싸한 모습이 그려졌다. 물론 완전한 확신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상상의 세계에 질문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책에는 그동안 저자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전국의 박물관에 대한 색다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실제 현장에서 보고, 느꼈던, 경험했던 내용이라 생생한 현장감을 준다.
6.2t에 달하는 ‘철조 석가여래 좌상’을 옮긴 과정도 흥미롭다. 지난 2004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이사를 할 당시였다. 높이가 무려 281cm에 달하는 큰 유물은 출입문이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었다. 결국 수장고 천장을 뚫고 유물이 든 상자를 크레인으로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전에 예행연습은 필수였다. 유물과 같은 무게의 돌을 넣은 나무 상자를 크레인으로 들어 올리는 작업을 했던 것이다.
또한 당시 새로운 박물관이 세워지면서 유물도 이사를 해야 했는데, 옮긴 유물이 무려 10만 점에 이르렀다. 가장 관심을 끄는 유물은 국보 78호인 금동 반가사유상이었다. 포장된 유물을 실은 차량에는 박물관 직원을 비롯해 무장한 호송직원이 탑승했다. 앞뒤로는 경찰차가 배치됐다. 이뿐 아니라 당시 유물은 4월 19일에 운송을 시작해 12월 14일 마무리됐다.
저자의 현재 고민은 박물관의 확장성이다. “고정 관념의 균열을 내고 인식의 폭을 확장시키고 성찰하는 기회”를 마련하는 데 무게를 둔다. 관람객이 어떻게 전시를 살펴보는 지도 중요한 관심사항이다. 수동적인 대상이 아닌 박물관을 움직이는 중요한 주체라고 상정한다.
유물을 대하는 관점도 사뭇 달라졌다. 이전에는 유물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유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는 “때로는 진열장과 박물관을 벗어날 때 속 깊은 이야기가 들렸다. 유물을 사람들과 연결시켜 살펴보자 유물이 생생하게 살아났다”고 말한다. <빨간소금·1만9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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