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식이법 놀이’ 영상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어린아이들이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안의 횡단보도 근처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가 차량이 다가오면 뛰쳐나가는 놀이가 유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식이 법’은 2019년 충남 아산의 한 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김민식 군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후 제정되어 2020년 3월 25일부터 시행 중이다. 이 법은 ‘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을 개정한 것인데,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 어린이가 사망했을 경우 운전자를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고, 상해를 입혔을 경우에는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돼 있다. 어린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대의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처벌 강화가 문제 해결의 첩경은 아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트럼프에게 패배한 이유 중의 하나로 남편인 클린턴 대통령이 확대시킨 ‘쓰리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꼽는 경우가 있다. 1994년 캘리포니아 주 정부가 세 번째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종신형에 처하게 만든 법이 ‘쓰리 스트라이크 아웃’인데, 클린턴 대통령이 이 법의 확대를 지지하면서 수감자 수가 대폭 증가했다.
미국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5% 남짓이지만 교도소 수감자 수는 2015년 약 220만 명으로 전 세계 수감자의 25%나 된다. 미국의 인종 구성은 백인 64%, 히스패닉 16%, 흑인 12%지만 수감자는 흑인 40%, 백인 36%, 히스패닉 21%로서 흑인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미국 수정헌법 제13조’라는 에이바 듀버네이 감독의 다큐멘터리가 있다. 1864년 수정헌법 제13조로 노예제는 공식 폐지되었지만 수감자를 예외로 두면서 흑인들을 대거 수감해 노예제가 사실상 계속 유지되었다는 시각이다.
20세기의 수감자 폭증은 공화당 소속의 닉슨과 레이건이 1970년~80년대 ‘로 앤 오더’(Law & Order) 또는 ‘저스트 세이 노’(Just Say No) 등의 구호로 범죄 및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이 계기였다. 마약 소지 같은 경범죄도 무조건 일정 기간 이상의 형량을 선고하는 ‘최소 의무형량 제도’가 실시되면서 수감자가 폭증했다. 1984년에 3만4천 명이던 종신형 수감자는 ‘쓰리 스트라이크 아웃’ 이후 2012년에는 16만 명으로 늘었다. 수감자 아홉 명 중 한 명이 종신형인 실정이다.
교도 시설 운영에 들어가는 비용도 연간 800억 달러, 100조 원 수준이다. 고령자 한 명의 수감 비용은 1인당 연간 6만~7만 달러(6700~7800만 원)로 일반 수감자의 두 배가 넘는다. 수감자가 급증하니 민간 교도소 사업이 활개를 치는데 이를 가리키는 ‘범산복합체’(犯産複合體:prison-industrial complex)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군부와 방산기업이 결합한 군산복합체(軍産複合體)에 빗대어 범죄 처벌이 기업과 결탁했다는 뜻이다. 2016년 대선 때 가족이 수감되어 있던 흑인·히스패닉들이 클린턴의 ‘쓰리 스트라이크 아웃’에 대한 반감으로 기권하거나 트럼프를 지지한 결과 트럼프가 당선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6년 7월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오클라호마주 엘리노의 연방교도소를 방문해 “재소자 1명을 1년 동안 가두는데 쓰는 비용으로 1명의 공립대학 학생 학비가 없어진다”면서 ‘최소 의무형량’ 제도를 폐지 또는 완화하도록 의회에 요청했을 정도로 단순한 처벌의 가중 확대 정책은 철저한 실패로 끝났다. 민주당인지 공화당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닉슨과 레이건의 정책을 계승했던 클린턴의 정책은 범죄 처벌을 산업으로까지 만들었지만 강력한 처벌이 사태의 해결책이 아님을 확인하는 또 하나의 사례로 남았다.
우리 사회의 정의 실현이 저해되는 것은 처벌이 약해서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법은 힘없는 민초들에게는 추상(秋霜: 가을의 찬 서리) 같지만 권력과 돈이 있는 지배층에게는 춘풍(春風: 봄바람)보다 부드럽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 현상이 바뀌지 않은 채 처벌만 강화해 봐야, 법조계 사람들 주머니만 채워 주거나 힘없는 민초들의 괴로움만 가중시킬 뿐이다.
<순천향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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