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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담긴 세상

[고규홍의 나무 생각] 하늘과 바람과 별을 따라 몸을 바꾸는 나무들

by 광주일보 2021.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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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제 살 곳을 찾아 흘러 다니다가, 한 번 머무르게 된 자리에서 자기만의 삶의 방식으로 별다른 변화 없이 수굿이 살아간다. 물론 나무도 뭇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눈에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때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거개의 나무는 오랜 시간을 두고 바라보아야 그 생명 안에 든 깊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꽃이나 단풍의 경우 짧은 순간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드러내며 사람의 눈을 끌기도 하지만, 대개의 나무는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천천히 제 멋을 드러내는 것이다.

 

중국에서 들여와 국내의 몇몇 정원에서 심어 키우는 원예식물 가운데 ‘삼색참죽나무’라는 아주 특별한 나무가 있다. 세 가지 빛깔을 가진 참죽나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세 가지 빛깔 가운데 플라밍고로 불리는 홍학의 깃털 빛깔을 꼭 닮은 진한 분홍색이 유난히 아름다워 ‘플라밍고 참죽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간을 두고 살펴보면 삼색참죽나무는 매우 기발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번에 알아챌 수 없는 기발함인데, 시간을 두고 여러 차례 찾아보아야 한다. 적당한 시간 간격으로 나무가 천천히 보여 주는 변화는 놀랍다. 아주 천천히 펼치는 한 편의 마술이라 해도 될 법하다.

가을에 잎 지고 새 봄에 잎 나기 전까지 삼색참죽나무는 볼품없는 나무에 속한다. 줄기가 기다랗게 솟았는데, 옆으로 난 가지가 별로 없어서 삐죽한 꼬챙이와 다를 바 없다. 특별할 게 없는 낙엽성 나무다.

하지만 봄꽃 피었다가 떨굴 즈음이 되면 비로소 삼색참죽나무는 마술 쇼를 펼치기 시작한다. 특히 삼색참죽나무의 새로 나는 잎에는 빨간 빛깔이 선명하게 오르며 잎자루까지 붉은 빛이 감돈다. 이때의 붉은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아릅답지만, 이건 나무가 보여 주는 마술 쇼의 서막일 뿐이다.

보름쯤 지나면 붉은 기운이 옅어지는 기미가 드러난다. 잎의 빛이 본격적으로 바뀔 차례다. 변화의 조짐을 보이던 붉은 잎사귀는 난데없이 노란색으로 바뀐다. 엄밀하게는 아이보리색이다. 생뚱맞다. 변화는 극적이다. 짐작하기 어려운 색깔로 잎의 색깔을 바꾼 것이다. 다시 보름 넘게 삼색참죽나무의 잎은 노랗게 봄을 보낸다.

그러다가 햇살이 따뜻해지면 나무는 또 한 번의 변신을 시도한다. 언제 붉었고, 언제 노란빛이었는지 싶게 시치미를 뚝 떼고 여느 나뭇잎처럼 초록색으로 바뀐다. 초록빛 안에 가득 담은 엽록소로 여름 따가운 햇살을 받아 광합성으로 양분을 모을 채비에 나서야 하는 나뭇잎 본래의 역할을 재우치려는 것이다.

빨간색에서 분홍빛을 거쳐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의 노란색이었다가, 종내에는 평범한 초록빛으로 바뀌면서 삼색참죽나무가 벌이는 변신의 마술 쇼는 마무리된다. 삼색참죽나무의 마술 쇼를 온전히 감상하려면 적어도 한 달 이상은 걸린다.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이 나무는 아무데서나 세 가지 빛깔을 뚜렷하게 드러내며 아름다움의 마술 쇼를 펼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충청남도 태안반도의 천리포 지역이 삼색참죽나무의 아름다운 변화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물론 다른 지역의 식물원 수목원에서도 이 나무를 가져다 키우는 곳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천리포 지역에서처럼 잎사귀 색깔이 선명하게 바뀌지 않는다는 데에 놀라움이 있다. 더 많은 실험과 연구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현재까지의 조사 결과는 그렇다.

삼색참죽나무의 마술을 가능하게 한 건 천리포 지역의 하늘과 바람과 구름 그리고 달과 별의 조화다. 생태학적으로 이야기하면 나무가 서 있는 지역의 기온과 공중 습도에 의한 신비로운 변화다. 둘 중 어느 하나만 맞지 않아도 잎 빛깔의 변화는 도드라지지 않는다.

그가 서 있는 자리에 있는 모든 것들과의 완벽한 조화만이 살아 있는 생명을 더 아름답게 한다는 이야기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 하나의 생명이 갖는 가장 찬란한 아름다움은 결코 남의 도움 없이 저 혼자서만 이룰 수는 없다. 그런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나무 한 그루의 느릿한 변화에서도 깨우치게 된다.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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