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직업군인 퇴직후 평생 일 찾다 2015년 영광으로 귀농
고구마 농사·세척한 고구마로 수익···시행착오 끝 연 매출 20억
농촌 선배들 도움 받아 귀농준비 2년···준비된 정도따라 '성패'
이재명(58)씨는 지난 삼십 년간 이사를 스물한 번 했다. 강원도는 물론 경기도, 경상도, 충청도 전국 팔도 안가 본 곳이 없다. 직업군인이라는 특성상 2~3년꼴로 근무지가 바뀌는 탓에 전국을 돌아다녀야 했다. 그런 그가 군복을 벗던 지난 2015년 생애 마지막 이사를 했다. 떠도는 삶에 지친 아내에겐 “여보, 이번이 마지막이야”라고 설득한 뒤였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처럼 초보 농부는 6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한해 고구마 1000t을 생산하는 대농(大農)으로 거듭났다. 그가 생산한 고구마는 출하와 동시에 팔려나간다. 초보 농군 티를 벗고 농업기술센터와 귀농·귀촌지원센터에서 귀농 강사로 활동도 하고 있다. 영광군 대마면 송죽리에서 고구마 농사를 짓는 이씨를 지난 29일 만났다.
“농사를 짓겠다고 결정한 이유요?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죠. 동기들과 선배들처럼 군사연구소에 취업 할까, 대학 강단에 서볼까 고민했지만, 그건 길어봐야 5년이에요. 군인연금 받으면서 남은 인생 편하게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도전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가까운 곳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요”
귀농을 결심한 이씨는 귀농 지역으로 영광을 택했다.
광주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영광과 특별한 인연이 없었지만, 사전조사를 통해 영광에서 농사를 짓기로 했다. 영광군 농지가격은 비슷한 조건의 전남지역 타 시·군에 견줘 낮은 편인 데다 어머니가 사는 광주와도 차로 30분이면 닿는 거리기도 했다.
그의 고구마밭에서는 몇 주전 심은 고구마 순 꺼내기 작업이 한창이었다. 봄볕 아래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이씨의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약 11만 평(3600㎡)에 달하는 드넓은 밭에서 이씨는 밭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고구마 순을 꺼내는 인부들에게 세심한 지시와 당부의 말을 이어갔다.
“고구마는 순은 비닐하우스에서 따로 키우는데 순이 다 자라면 밭에 옮겨 심습니다. 그리고 흙 아래로 묻었던 고구마 순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이랑 위로 꺼내는 작업을 해요. 오늘이 그날입니다. 온전히 사람 손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 손도 많이 필요하고 어찌 보면 한해 농사 중에 수확시기와 더불어 가장 바쁜 시기죠”
첫해 5000평으로 시작했던 농사 규모는 해를 거듭하면서 11만평으로 크게 늘었다. 6년 사이 무려 20배나 규모를 키운 것이다. 생산량도 늘어 올해는 1000t가량 수확하게 될 거라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6년 만에 11만평 규모의 고구마 농사를 짓는 대농이 된 데에는 그의 철저한 귀농 준비가 도움이 됐다. 30년간 군인으로 살아온 이씨는 농부가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인 부지런함이 몸에 밴 데다 작전 장교로 일해 온 경험을 살려 전역을 2년 앞둔 2013년 귀농을 결심하고 누구보다 체계적인 귀농 계획서를 만들어 나갔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통계청에서 농사와 관련된 기초자료와 통계를 분석했고 농사와 관련된 책을 통해 기본적인 지식을 머리 속에 담았다. 특히 귀농 전 5년간의 농수산물 가격 동향은 재명씨가 어떤 작물을 재배해야 하는지 결정하는데 도움이 됐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만든 ‘귀농 계획서’에는 농업 환경변화, 농사로 억대 연봉 만들기, 농업인과 농업법인, 농지확보, 농지를 활용한 수익 증식 등이 담겼다. 그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귀농을 준비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철저한 계획을 바탕으로 뛰어든 귀농이었지만, 첫해부터 큰돈을 손에 쥔 건 아니었다.
“귀농 첫해엔 다른 농가에선 겨우내 심었던 고구마 순이 다 올라오는데 저는 한참이 지나도 순이 올라오지 않더라고요. 알고 보니 순을 키울 때 물을 흥건히 줘야 하는데 저는 화분이 물 주듯 하다 보니 순이 남들보다 한 달은 늦었어요. 지금이야 웃으며 얘기하지만, 그때는 얼마나 답답하던지”
귀농 첫해 실패는 약이 됐다.
고구마 농사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 영광군 농업기술센터를 찾았고 고구마 농사를 전문적으로 짓는 ‘멘토’를 소개받았다.
“멘토의 도움을 통해 이듬해 농사부터는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어요. 선배 농부들에게 받기만 하지 않고 판매처가 없어 전전긍긍하는 주변 고구마 농가의 고구마를 직접 수매해주기도 하며 관계 쌓기에 힘을 쏟았습니다”
쏟아지는 땀방울만큼 소득은 늘어났다. 자신감이 붙은 이씨는 5000평이던 농지 규모를 1만2000평→5만평→11만평으로 점차 늘렸다.
지난 2018년에는 시설투자도 본격화해 70평 규모의 세척장과 창고 6동(240평)도 마련했다. 창고는 시장가격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세척장은 세척한 고구마와 그렇지 않은 고구마의 시장 가격이 상당해 수익을 내기 위해서 있어야 할 필수 시설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과감한 투자와 농지확대로 이씨는 지난해 2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씨의 성공에는 아내 김미선(55)씨의 뒷바라지도 한몫했다. 농촌생활은 절대 하지 않겠다던 김씨였지만, 남편의 고집에 못 이겨 영광으로 향했고 지금은 농장에 없어선 안 될 존재가 됐다. 고구마 순을 수확하는 일부터 인부들 식사와 새참 챙기는 일까지 김씨가 도맡고 있다.
이씨는 귀농의 최고 장점으로 ‘자유로움’을 꼽았다. 도시생활 속 인간관계와 조직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생활이 너무나 자유롭다는 것이다. 또 ‘정’과 ‘신뢰’로 흘러가는 농촌생활에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는 귀농을 생각 중인 후배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귀농은 절대 낭만적이지 않아요. 귀농은 ‘전쟁’입니다. 공기 좋고 물 맑은 한적한 시골 마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한가로이 바비큐 파티나 즐길 생각이시라면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또 귀농은 단순히 생각만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가 없어요. 어디로 귀농해 어떤 작물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 생산한 농산물을 어떻게 판매할 것인 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영광=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전남, 고구마 재배 전국 25%…해남·영암·무안 주산지
식이섬유 많아 변비 예방…낮은 칼로리 다이어트 도움
전남은 고구마 주 생산지로 전국에서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가장 많다. 11일 전남도농업기술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남지역 고구마 재배 면적은 5572ha로 전국 재배면적(2만 1941㏊)의 25%에 달한다. 전남 다음으로 재배면적이 많은 곳은 경기도(3714㏊)였으며, 전북(3572㏊)과 충남(3044㏊), 충북(1602㏊) 순이다.
재배면적과 더불어 생산량도 전남은 2019년 13만 8011t으로 전국 생산량 36만 8324t의 37%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전북(5만 8767t)→경기도(5만 4035t)→충남(3만 7872t)→경북(2만 652t) 순이었다.
전남에선 해남과 영암, 무안 등이 주산지로 꼽혔다. 전국적으로는 경기 이천과 여주, 충남 당진과 전북 고창이 있다.
해남은 600여 농가가 1964㏊ 재배면적에서 연간 3만4000여t의 고구마를 생산하는 최대 주산지다. 전남 고구마는 게르마늄이 다량 함유된 황토 땅에서 자라 당도가 높고 식이섬유와 무기질 성분이 많아 그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요와 관심이 늘고 있다.
고구마는 섭취 후 혈당을 천천히 올리는 식품으로 대표적인 식품이다. 당지수가 낮아 지방 합성속도가 느려 에너지로 사용되는 것이 많고, 지방으로 흡수되는 것을 줄여줘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
식이섬유가 많아 변비를 예방하고 장내에 유익한 균들을 많이 발생시켜 해로운 균의 증식을 억제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칼로리가 100g당 131㎉로 적은 양을 먹고도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전남지역 고구마 재배면적은 지난 2010년 3981ha에서 40% 증가한 5,572ha(2019년)로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생산량 또한 2010년에 견줘 84.5% 증가했다.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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