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 잃은 내게 빛이 되어 준 어머니…끝없는 사랑입니다”
시각장애인 전세빈씨
발레학원 하다 시력 잃으며 좌절
어머니 격려·용기로 제2의 인생
‘장한 어머니상’ 정춘자씨 아들 강동주씨
아버님 돌아가신 후 온갖 일 다해
억척 삶 살며 홀로 4남매 키워
엄마는 자신보다 항상 자식이 먼저다. 먼저 먹이고 먼저 입힌다. 그러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다른 아이들보다 맛있는 것 못해줘서, 함께 놀아주지 못해서, 사달라는 것 항상 못 사줬다고 미안하다고만 한다.
‘엄마’를 떠올릴 때면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는가 하면, 눈물이 어느새 차오르는 것도 그런 이유일거다.
그때 엄마는 내게 왜 그렇게 말했을까, 그렇게 힘들었을 때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며 이겨냈을까, 항상 옆에 있을 것 같던 엄마가 지금 왜 이렇게 늙었을까.
그래서 엄마에게 더 고맙고 미안하다. 쑥스럽다며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지 못하지만 어버이날을 맞아 자녀들이 엄마에게 사랑의 인사를 보냈다.
◇좌절한 날 일으켜 세워준 엄마, 고마워요=갑작스럽게 시력을 잃고 장애인의 삶을 살게 된 전세빈(여·52)씨에게 엄마 김순자(75)씨는 세상 그 누구보다 고마운 존재다.
엄마 김순자씨의 부단한 뒷바라지 속에 성공한 발레리나의 삶을 살다 은퇴 후 발레학원을 차리게된 전씨는 지난 2010년 녹내장 판정을 받은 뒤 서서히 시력을 잃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시련, 현실을 받아드리기 쉽지 않았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찾아왔을까’ 전씨는 시력을 잃은 슬픔에 며칠을 울고 울었다. 하지만 그런 세빈씨 옆에서 엄마는 딸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엄마는 딸이 좌절할까 단 한번도 딸 옆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딸의 손과 발이 돼 발레학원 운영을 물심앙면으로 도왔던 엄마는 이제 딸의 눈이 돼 주었다.
세빈씨는 “학원생들과 보호자들이 학원을 방문할 때면 ‘00엄마 오셨네’, ‘00이가 왔네’라고 귀띔해줬어요. 딸의 시력이 나빠진 것을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알아보지 못하도록이요. 엄마는 원생들 옷 갈아 입히기, 청소, 식사 등 엄마는 시력이 좋지 않은 딸 대신 학원 대소사를 모두 책임 졌어요”라고 말했다.
세빈씨 말고도 엄마 김순자씨는 두 여동생을 세계적인 무용수로 키워냈다. 세빈씨의 두 여동생은 스웨덴 왕립 발레단과, 유니버셜 발레단 단원으로 활동했을 정도로 세계적인 무용수다.
시력을 잃은 세빈씨 곁에는 언제나 엄마 김순자씨가 있었다. 2년 전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해 생애 처음으로 엄마와 따로 살게된 세빈씨지만 아직도 엄마의 도움 없어서는 안된다.
세빈씨는 “제게 있어 엄마는 은혜라는 말이 가볍게 느낄 정도로 고마운 사람이에요. 사실 지금까지 받기만 했던 딸이고 앞으로도 엄마가 필요하지만, 가정도 생겼으니 이제는 엄마가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보려고요. 엄마가 벌써 75세나 되셨는데, 못난 딸은 항상 엄마가 건강하기만을 바랄 뿐이에요”라고 말했다.
◇뒷바라지해준 엄마, 사랑해요= 강동주(59)씨 어머니인 정춘자(79)씨는 지난 2019년 광주시로부터 장한어머님상을 받았다. 하지만 동주씨에게는 엄마는 장한 엄마보다는 자식들을 위해 1년 365일 쉬지않았던 억척스러운 엄마이다.
강씨의 집은 1980년대 그리 부유하진 않아도 사업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어려움 없이 생활해왔다. 하지만 1986년 카세트 공장을 크게 운영하시던 아버지가 사업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고 강씨는 기억했다. 결국 사업이 어려워져 가산의 대부분이 빚으로 날아가 버렸고, 이후 1989년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결국 정춘자씨는 생계전선에 뛰어 들 수밖에 없었고 농산물 중계상을 시작으로 컴퓨터 학원 등 할수 있는 일이라면 앞뒤를 재지않고 돈을 벌었다. 동주씨를 포함한 1남 3녀를 먹고 입히려면 어쩔 수 없었다.
정씨는 여성 사업가로 활동하면서 1남 3녀를 모두 대학을 졸업시키고 뒷바라지 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는고 자식들은 입을 모았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한번도 내색을 안하시고 박사학위를 따고 싶어하는 강씨의 학비도 부족함 없이 지원해줬다는게 강씨의 설명이다.
강씨는 “내가 직접 사회에 나와 생활을 해보니 1980~90년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기 힘든 시절 홀로 4명의 자식을 키우기 위해 힘든 사회 생활을 하시면서 가정을 꾸려온 어머님이 대단하다고 다시금 느낀다”고 말했다.
◇전국 돌며 격려해준 엄마, 최고에요= 전남 ‘으뜸인재’인 이지원(여·20)씨는 올해 서울대학교 국악특기자로 입학했다. 이씨는 자신을 위해 본인의 삶을 뒷전으로 미루는 어머니 박소연(47)씨를 생각하면 항상 애틋한 마음이 앞선다.
진도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박소연씨는 국악을 하고 싶어하는 지원씨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국악을 지원씨가 대회를 나가기 위해 대구·진주 등 전국을 누빌 때 항상 운전대를 잡은 것은 엄마였다. 혹시나 지원씨의 컨디션이 안좋지 않을까하는 걱정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보다는 직접 차를 몰았다고 한다.
또 예선부터 본선까지 타 지역에서 보내려면 자고 먹는 게 중요한데 엄마 박소연씨가 모두 해결했다. 또 지원씨의 대회 의상과 헤어 스타일링도 전담했다.
지원씨는 “오늘(6일)이 엄마의 생일인데 앞으로 더 많이 노력해서 국악원 단원이 돼 엄마를 호강시켜주겠다”면서 “잘하고 있으니 내 걱정보다는 엄마의 삶도 돌아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엄마, 내 눈이자 세상이에요=“변함없이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엄마.제 눈이 돼주어 감사해요.”
세광학교 고교 1학년에 재학중인 시각장애인 김재현(17)군은 어버이날은 앞두고 엄마 라양선(48)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초등학교 5학년 생긴 시각장애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 졌어요. 하지만 부모님은 제가 좌절할까. 괜찮다고 하시며 저를 안아주셨어요. 엄마는 제 눈을 위해 전국 방방 곳곳을 돌아다니며 돈도 많이 쓰셨죠”
엄마 라영선씨는 재현군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좋지않은 생각을 하며 괴로워할까 싶어 쉬는 날이면 함께 여행을 다녔다. 지금도 재현군이 기숙사에서 나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여수를 찾을때면 맛집을 찾아다니며 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재현군은 “제 원래 꿈이 수의사 였는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엄마가 반려동물을 함께 키워보자고 했어요. 사실 제가 가장 고마운 건 예전과 다름없이 저를 대해주신다는 거에요. 엄마는 제가 어떤 것이든 다 해낼 수 있다고 하셨어요. 제 꿈은 특수교사인데 훌륭한 선생님이 돼, 저처럼 장애를 가진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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