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항쟁의 현장인 옛 국군광주 병원 본관의 작은 성당에 들어서면 멈춰있던 시간이 다시 흐른다. 오래된 스태인드 글래스를 배경삼아 얽히고 설킨 실타래와 한글 등 다채로운 언어로 번역된 성경 구절이 적힌 종이가 만들어낸 터널 사이를 지나면 잠시 그 때로 돌아가는 듯하다. 일본 작가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 ‘신의 언어’로 지난해 열린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특별전 ‘MaytoDay’(메이투데이) 중 광주비엔날레 커미션(이하 ‘GB커미션’)에 선보인 작품이다.
(재)광주비엔날레가 2018년부터 시작한 ‘GB커미션’은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관한 질문과 비엔날레를 통한 광주정신의 지속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시작됐다. 광주를 기억하고, 광주를 이야기하는 작품들은 특히 옛 국군광주병원 등 광주의 다양한 장소를 ‘발견’하며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등 세계적인 작가들은 광주라는 도시를 미학적으로 재해석해 다채로운 작품을 제작했다.
오는 4월1일부터 5월 9일까지 열리는 광주비엔날레에서는 다양한 GB커미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올해 신작을 비롯해 2018년 제작 작품, ‘메이투데이’ 당시 선보였던 작품을 아우르는 전시로 옛 국군광주병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문화재단에서 만날 수 있다.
올해 새롭게 참여하는 작가는 세계적인 아티스트 이불을 비롯해 배영환, 김성환, 타렉 아투이 작가 등 4명으로 광주의 역사, 기억, 트라우마, 전통, 건축 및 정신적 유산 등과 연관된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불 작가는 구 국군광주병원에서 아크릴 거울 등을 활용한 신작과 2018년 철거된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에서 나온 철조망 등을 사용해 만들어진 작품을 선보인다.
배영환 작가는 5·18민주화운동 중에 사망한 고(故)윤상원 열사와 고(故)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차용한 작품을 제작한다.
김성환 작가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5관에서 20세기 초 조선에서 미국 하와이로 이주한 이민자 역사와 광주의 5·18민주화운동을 연결한 작품을 선보인다.
사운드 아트의 잠재력을 탐구한 타렉 아투이는 한국 음악 전통과 그 속에 담긴 철학적 사상이 단초가 된 신작을 광주문화재단에서 선보인다. 2019년 광주를 방문한 그는 전통악기, 옹기, 청자, 한지 등 한국의 예술과 접목시킨 작품을 구상했다.
국군광주병원에서는 시오타 치하루의 작품 ‘신의 언어’와 함께 2018년 작 카데르 아티아의 ‘이동하는 경계들’과 마이크 넬슨의 ‘거울의 울림 (장소의 맹점, 다른 이를 위한 표식)’을 만날 수 있다. ‘이동하는 경계들’은 광주 트라우마센터를 통해 만난 5·18 유족들의 이야기와 정신과 의사 정혜신 등의 인터뷰를 통해 상실과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국군병원의 의자와 의족, 신발 등을 배치한 설치물은 쉽게 치유되지 못하는 ‘상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병원 본관 옆 붉은 벽돌의 ‘국광교회’에서는 ‘거울의 울림’을 만날 수 있다. 병원에서 떼어낸 수십개의 거울로 만든 설치작품이다. 깨진 유리창 등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담긴 공간에 걸린 거울들 속에 자신의 모습이 비친다. 거울엔 손씻기, 군인의 머리 길이 등의 글귀가 그대로 적혀있다. 역사의 흔적들이다.
2014년 광주비엔날레에서 만났던 ‘채의진과 천 개의 지팡이’를 지난해 ‘메이투데이’전에서 다시 선보인 임민욱 작가의 작품도 국군광주병원에 전시된다. 작품은 1949년 발생한 문경 민간인 집단학살에서 생존했던 채의진 선생이 만들었던 지팡이 수백개로 이뤄진 설치물이다.
또 호 추 니엔이 동학운동에서부터 5·18까지 이어져온 민주화운동의 궤적을 애니메이션으로 재편집한 영상작업 ‘49번째 괘’는 문화전당에서 다시 관객들을 만난다.
GB커미션 전시는 사전 예약제와 시간제로 운영된다. 월요일 휴관. 무료관람.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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