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생각들
오원 지음
개나리, 목련, 벚꽃 등 앞 다투어 피는 꽃, 막 수줍은 싹을 틔우기 시작한 나무, 적당한 바람. 이즈음 가끔 산책을 나가게 되면 만나는 풍경들이다. 요즘 동네 산책을 한다는 이들을 자주 만난다. 마음 맞는 이와 함께 걷기도 하지만, 홀로 걷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팬데믹으로 ‘멀리, 많이, 여럿이’ 대신 ‘가까이, 조금씩, 혼자’가 어색하지 않은 요즘이다.
평범한 직장인이자 전시회를 연 예술가이자, 글을 쓰는 오원이 펴낸 ‘걷는 생각들-오롯이 나를 돌보는 아침 산책에 관하여’는 걸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그 길에서 길어올린 생각들을 풀어낸 ‘산책의 기쁨’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산책은 나라는 우주를 만나는 여행”이라고 말한다.
매일 매일 출근해야 하는 직장이 있고, 하루하루 살아내야 할 생계가 있는 저자는 어느 날 삶을 돌아보고 싶을 때 찾아간다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보자고 마음 먹는다. 실제 그가 걸은 길은 800km에 이르는 프랑스 산티아고 순례길은 아니다. 그 길을 걷는다는 생각으로 매일 아침 출근 전 1시간씩 동네 산책에 나섰고 약 11개월 동안 814km를 걸었다. 그 전에도 늘 걸었던 길이었지만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이 되는 순간 무언가 달라져 있었고, 그 변화의 마음과 감정을 책으로 엮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걷는 걸음의 합이 그의 삶이자 인생”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아침에 걷는 행위는 나에게 우주의 한 존재로서 겸손하게 살아가는 태도와 예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했고, 나는 생각보다 귀한 존재라는 기특한 생각을 스스로 하게됐다”고 말한다. 혼자 걸었다고 생각했지만 현재의 나, 과거의 나, 미래의 나와 결국 함께 걸었고 그 길에서 소박한 깨달음을 얻는다.
저자는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출발해 동네를 산책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나의 외부’에 집중하며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회사 근처를 걷기도 한다. 가끔은 오로지 ‘걷기’를 위해 제주도 사려니 숲으로 떠나기도 하고, 북한산 둘레길을 ‘여럿이’ 함께 걷기도 한다.
저자는 손으로 하루하루 걸은 거리를 쓰고 스티커도 붙여가며 나만의 ‘산책지도’를 만들고 음악을 동반자 삼아 걷는 즐거움을 누린다. 책에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가브리엘의 오보에’와 패닉과 조동진의 노래, 류이치 사가모토의 음악 등 산책할 때 들은 음악도 함께 적었다. 또 헬렌켈러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 ‘산책’, 프레데리크 그로의 ‘걷기, 두발로 사유하는 철학’ 등 다양한 책들에 대한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꼭 저자처럼 ‘아침산책’일 필요는 없겠다. 자신과 마주하며 걷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산책’은 의미있는 일일 테니. 자신만의 ‘플레이 리스트’도 함께라면 더 없이 좋고.
<생각정거장·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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