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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기자

이응노 작품 ‘수(壽)’, 반복적 선으로 ‘열린 지붕’을 이루다

by 광주일보 2021.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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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품은 건축물 열전 건축 도시의 미래가 되다 (19) 이응노 미술관

 

술관 정문에 다다르자 한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하는 소나무가 가장 먼저 시선을 끈다. 모던한 디자인의 백색건물을 배경으로 서 있는 소나무에선 수묵화에서 느낄 수 있는 고졸미가 짙게 풍긴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소박하다. 화려한 건축미와 웅장한 스케일을 뽐내는 여타 미술관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건물 앞에 잠시 머물러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편안한 기분이 든다. 대전시 서구 둔산대로 갑천변에 자리한 이응노 미술관의 첫 인상이다.

이처럼 친근한 이미지를 주는 이응노 미술관은 일반 미술관과는 조금 결을 달리 한다. 다소 위압적이고 경건한 분위기가 감도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보기 힘든 열린 구조로 설계됐다. 보통, 1층 로비나 안내 데스크를 거쳐 2층 전시실이나 지하 전시실로 이어지는 동선이 아니다. 입구를 지나 1층으로 들어서면 바로 전시장이 나오는 구조가 흥미롭다.

 

미술관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대전시립미술관, 대전예술의 전당 등이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문화벨트에서 가장 접근성이 뛰어나다. 높은 계단을 오르거나 광장을 지나야 ‘입장’할 수 있는 대전시립미술관과 달리 잔디밭 산책로를 따라 거닐다 자연스럽게 미술관으로 들어 갈 수 있다. 그 어떤 문턱이나 경계도 없다.

마치 이응노 화백(1904∼1989)의 예술세계를 지상에 펼쳐 놓은 듯 한 콘셉트는 프랑스 건축가 로랑 보두앵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근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은 그는 이 화백의 작품을 건축으로 형상화 하기 위해 ‘뮤제오그라피’(Museography·미술관 외관과 작품이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를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생전 이응노 화백의 예술혼에 남다른 경외심을 보인 로두앵은 그의 미술관 설계를 의뢰받고 흔쾌히 수락했다고 한다. 때문에 이응노 미술관의 콘셉트를 이해하기 위해선 고암의 작품세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근현대미술의 거장 이 화백은 한국미술 1세대로 한국적 추상미술의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가로 꼽힌다. 그는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했지만 예술적 열정과 실천 속에서 자신의 뿌리에 대한 회귀를 멈추지 않았다. 전통 수묵채색 서화를 탐구해 일가를 이룬 그는 답습의 고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1958년 중년의 나이에 프랑스로 향했다. 이때 추상표현주의 등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에서 유행하던 사조를 보며 자유로운 조형정신에 자극을 받아 동서양 미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의성 풍부한 ‘문자추상’, ‘군상’ 등 독창적인 화풍을 선보였다.

 

이 같은 이 화백의 독특한 작품세계는 미술관 곳곳에서 살아 숨쉰다. 가장 대표적인 게 지붕이다. 얼핏 보면 한옥의 창살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한옥의 서까래를 연상케 한다. “지붕격자-보(지붕의 무게를 지탱해주는 구조재)의 단면들은 막대기 자를 옆으로 세운 것 같은 기다란 직사각형이다. 보의 층(높이)은 1.6m에 육박한다. 이는 보와 보 사이의 간격인 1.2m 보다 큰 수치로 태양 빛이 바로 투과하지 못하고 여과는 효과를 연출한다.간접광이 필요한 미술관에서는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내는 데 안성맞춤이다. ”(건축가 이중원)

이응노 미술관의 또 다른 특징은 벽이다. 동서로 관통하는 긴 벽은 지붕 격자보를 지지하면서 동시에 전시실을 남북으로 구획하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단층인 남측 전시실은 천장고가 높고 밝은 데 반해 중층 구조인 북쪽 전시실은 천장고가 낮고 어둡다. 이는 다양한 매체를 가로 지른 고암의 회화, 도자, 조각세계와 만나려는 건축가의 시도로 보인다.

 

 

사실, 이응노 미술관은 건축면적이 1366㎡로 그리 큰 규모는 아니다. 지하 1층은 수장고, 전시공간은 4개의 전시실(본관·1139㎡)로 나뉜 1층과 별관 1개(22.6㎡), 야외전시장이다. 하지만 자연채광과 바깥 자연풍광을 최대한 끌어 들인 탓에 비좁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특히 2전시실에서 3전시실로 향하는 복도는 외벽 유리 너머로 연못과 접해 있어 색다른 정취를 느끼게 한다. 반면 대지(조경)면적은 8100㎡에 달한다.

뭐니뭐니해도 이응노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는 ‘뚫린 지붕’이다. 보두앵은 자신이 존경하는 이응노의 작품 ‘수(壽)’ 속에 내재된 조형적 구조에서 영감을 받아 고암의 작품세계를 건축학적으로 풀어냈다. 이 때문에 건물의 묘미는 위에서 내려다 형태에 있다. 특히 2전시실에서 3전시실로 향하는 복도는 외벽 유리 너머로 연못과 마주보고 있다. 그 위로 한옥의 서까래를 떠올리게 하는 반복적인 선이 ‘열린 지붕’을 이루고 주변의 대나무가 우거져 마치 ‘정원 속 연못’같다.

 

하지만 이응노 미술관의 ‘대표작’은 다름 아닌 ‘군상’ 시리즈다. 1958년 프랑스로 건너간 이 화백이 80년 5·18항쟁 소식을 접한 후 광주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억압속에서도 자유를 외친 혁명의 숭고함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한지와 먹을 소재로 한국적 화법에 서양적 어법을 접목한 독창적인 문자추상앞에서 관람객들은 마음을 비우고 그의 예술세계에 빠져 든다. 화면 위에 마치 초서를 흘려 쓴듯한 독특한 형상은 고암의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미적 체험이다.

미술관의 소장품 1237 점 가운데 98%는 고암의 미망인 박인경 명예관장으로 부터 기증받은 유작이다. 작가 미술관으로는 국내 최고 수준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그의 작품과 조형적 매력은 매년 전국의 미술애호가들을 대전으로 불러 들인다. 지난 2017년 대전 고암 미술문화재단이 이응노미술관 개관 10년을 맞아 실시한 설문조사가 이를 반증한다. 대전시민과 외지인 633명을 대상으로 한 ‘이응노미술관 시민 인지도 조사’에서 응답자의 88%인 554명이 ‘미술관에 방문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고암 이응노 작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74%인 466명. 이들 가운데 ‘잘안다’는 14%(66명), ‘조금 안다’ 55%(257명), ‘잘 모른다’ 30%(140명), 무응답 1%(3명) 등이었다. 특히 466명 중 79%인 367명은 실제 고암 이응노의 작품을 본 적이 있었다. 인상적인 건, 고암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는 26% 가운데에서도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미술관을 기꺼이 찾고 싶다고 응답한 사람이 많았다는 것이다.

/대전=박진현 문화선임 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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