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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기자

불멸의 화가 만나는 설레임…정읍에서 사랑에 빠지다

by 광주일보 2021.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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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품은 건축물 열전 건축 도시의 미래가 되다 (20) 정읍시립미술관]
박스 형태 단조로웠던 도서관 2015년 리모델링 미술관으로
자연광 쏟아지는 유리천장 2층, 3개 전시실…1층 카페
2019년 ‘한국 근현대 명화전’ 수만 여명의 관람객 다녀가

옛 시립도서관을 리모델링해 지난 2015년 문을 연 정읍시립미술관은 차별화된 기획전을 통해 전국구 미술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국의 수많은 미술관들을 취재하다 보면 저마다 독특한 색깔이나 분위기가 느껴진다. 건축학적으로 뛰어난 외관을 과시하는 미술관이 있는 가 하면 스타작가들의 화려한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도 있다. 이런 미술관들은 대개 국립 미술관이거나 재력있는 기업인들이 사재를 털어 지은 사립미술관이다. 하지만 광주와 자동차 거리로 1시간 안팎인 전북 정읍시립미술관은 이들과 결이 다른 곳이다. ‘작지만 강한 미술관’이라고나 할까.

미술관 내부의 중심에는 자연광을 끌어들이는 유리천장을 설계해 따뜻하면서도 은은한 분위기가 감돈다.

 

사실 정읍시립미술관은 여타 미술관에 비해 내세울만한 건축물은 아니다. 유명 건축가들이 설계한 ‘작품’과는 거리가 먼, 지난 2015년 옛 시립도서관을 리모델링해 문을 열었다. 지상 2층에 3개의 전시실과 카페를 갖춘 아담한 건물이다. 하지만 1층과 2층 사이에 자연광을 실내로 끌어 들인 유리천장은 연중 따뜻하면서도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박스 형태의 단조로운 도서관이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인구 11만 명의 작은 도시에 자리하고 있는 미술관은 국내 미술계에선 꽤 인지도가 높은 곳이다. 지난 2019년 ‘100년의 기다림-한국 근현대 명화전’을 통해 3개월 동안 수만 여명의 관람객을 끌어 들어 전국구 미술관으로 화려하게 신고식을 치렀다. 그로부터 2년 후. 정읍시립미술관이 ‘피카소와 동시대 화가, 정읍에서 사랑에 빠지다’(2월18~5월16일)로 또 한번 뉴스메이커로 등장했다. 그것도 대부분의 미술관이 코로나19로 전시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것과 달리 ‘판’을 벌인 것이다.

지난달 중순, 정읍시립미술관으로 화사한 봄 나들이에 나섰다. 코로나19로 예전의 일상을 찾아 보기 힘들지만 미술관 주변은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입장을 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관람객들의 모습이 요즘의 분위기와는 매우 동떨어진 듯 ‘한가’해 보였다. 불과 2년 전 만 해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미술관을 찾는 이들이 줄어든 탓이다.

파블로 피카소 작 ‘오리모양 화병’<사진=정읍시립미술관 제공>

 

미술관 로비를 지나 1층 제 1전시실에 들어서자 20세기 최고의 화가 피카소(1881~1973)가 반갑게 맞는다. 이번 특별기획전의 메인 이벤트인 제1전시실은 ‘피카소의 예술과 삶’이라는 부제 그대로 재료, 기법, 장르를 초월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거장의 독창성과 다재다능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작품’들로 꾸며졌다.

“나는 사물을 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대로 그린다”. 피카소는 캔버스에 자신의 본 느낌을 그대로 그려내 기존의 틀을 깨뜨린 입체주의라는 파격적인 사조를 창안했다.

제1전시실은 이같은 그의 천재적인 역량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유화 ‘아틀리에의 모델’과 판화 ‘알제의 여인들’, 연인에 대한 사랑의 열정을 담아 그린 드로잉, 말년에 보다 넓은 예술 세계를 추구하며 몰두한 도자기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82점을 선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피카소의 판화는 단순한 복제가 아닌 회화적 기법이 가미된 또 하나의 ‘그림’이다. 출품작인 판화 ‘알제의 여인들’이 감동을 불러 일으키는 건 그 때문이다.

인상적인 건 수십 여 점의 도자(陶磁) 작품들이다. 비록 유화 작품이 1점에 불과하지만 수십 여 점에 달하는 도자(세라믹) 컬렉션은 한 점 한점이 한폭의 그림 처럼 관람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화려한 컬러에서 부터 세련된 문양의 접시, 부엉이·오리·새 등 다양한 동물을 형상화 한 물병 작품들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리스 신화에서 차용한 형상이나 에게해 인근의 고대 그릇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도 보인다. 마치 캔버스를 3D로 재현해 놓은 듯하다.

전시장에서 만난 정경옥(34)씨는 “코로나19 때문에 망설였지만 국내에서 피카소의 작품을 접하기가 쉽지 않아 일부러 휴가를 내고 미술관에 왔다”면서 “솔직히 유화 작품이 1점뿐이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판화, 도자, 드로잉 등 거장의 작품을 본 순간 내 생각이 너무 짧았다는 걸 느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조르주 브라크의 큐비즘, 달리의 초현실주의를 재해석한 장승효 작가의 영상작품.

 

2층에 꾸며진 제2전시실은 피카소와 같은 시기에 예술활동을 펼친 ‘동시대 화가들의 공간’이다. 조르주 브라크, 마르크 샤갈, 호안 미로, 마리 로랑생, 장 포르티에, 살바도르 달리 등의 작품 3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이 가운데 샤갈의 ‘파리 하늘의 두 남녀’는 그의 아내이자 뮤즈인 벨라와 자신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이들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관람객의 발길을 붙든다.

제3전시실은 피카소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매우 특별한 자리다. 그의 전속 사진작가인 앙드레 빌레가 앵글에 담은 모습은 거장이 아닌 인간 피카소의 매력을 느끼게 한다. 앙드레 빌레는 1953년 피카소를 처음 만난 후 줄곧 그의 아뜰리에를 드나들며 작업하는 피카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흑백사진에 담긴 피카소의 작업실, 아내 자클린과 함께 있는 다정한 모습, 익살스런 피카소의 모습, 가족이나 친구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모습은 그의 예술적 원천이 바로 가족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번 특별기획전에서는 피카소와 동시대 화가들을 재해석한 국내 작가들의 미디어 작품과 AI를 활용한 체험 콘텐츠도 감상할 수 있다. 설치미술가 장승효와 하준수가 바로 그들이다. 장 작가는 피카소와 동시대 화가인 브라크의 큐비즘, 달리의 초현실주의 등을 21세기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영상 작품으로 관람객들에게 색다른 감흥을 선사한다. 하지만 전시장 층고가 낮아 스펙터클한 영상 효과를 제대로 느낄 수 없는 점은 아쉽다.

하 작가는 AI를 활용해 피카소의 화풍으로 시민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흥미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피카소가 그린 수많은 인물상을 인공지능을 통해 6개의 모델로 뽑아내 이 가운데 관람객들이 하나를 선택해 사진을 촬영하면 모니터에 피카소의 작품 속 주인공을 닮은 이미지가 등장한다. 원하는 관람객에 한해서 이메일로 이미지를 보내주는 데 인기가 꽤 많다. 단순한 관람에 그치지 않고 특별한 추억을 안고 돌아갈 수 있는 체험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전시실 옆에 자리한 2층 라운지에서도 흥미로운 코너가 마련돼 있다. ‘나도 피카소’ 체험존. 관람을 마친 이들은 누구나 벽면의 피카소 드로잉 도안에 라인테이프를 붙여 마치 피카소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수 있다.

/정읍=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 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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