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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기자

이이남스튜디오, 건축물에 미디어아트를 입히다

by 광주일보 2020.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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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품은 건축물 열전 건축 도시의 미래가 되다 <14> 이이남스튜디오  

 

올 한해 지역 미술계는 코로나19의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반가운 뉴스가 이어졌다. 그중에 하나가 지난 11월 초 근대역사문화마을인 양림동에 문을 연 ‘이이남스튜디오’다. 광주를 넘어 세계적인 미디어아티스트로 부상한 이이남 작가가 3년 간 공들인 창작 스튜디오는 개관과 동시에 입소문이 나면서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이이남스튜디오는 작가의 작업실과 미디아어트 뮤지엄(M.A.M), 미디어 카페테리아 등 3개의 독립적인 영역이 한 곳에 들어선 복합문화공간이다. 

 

옛 제약회사 건물을 리모델링한 이이남 스튜디오 전경.

이이남 스튜디오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깔끔한 외관이 시선을 잡아 끈다. 건축물이라기 보다는 거대한 캔버스 처럼 여백의 미가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 같다. 하지만 이이남 스튜디오의 진가는 내부에서 더 생생하게 드러난다.

1층 로비에 들어서면 자연채광을 뒤로한 채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피에타’(Pieta) 조각상이 방문객을 맞는다. 1층에서 옥상으로 이어지는 중정형태의 나선형 계단과 유리 천장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이 후광효과를 연출한다. 피에타 조각상 아래 놓인 수 십여개의 촛대는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이남 스튜디오’의 나선형 계단 중앙에 설치된 작품 ‘다시 태어나는 빛’. <이이남 스튜디오 제공>

계단을 타고 2층에 올라서면 유리 천장에 매달려 있는 예수상 ‘다시 태어나는 빛’이 눈에 들어온다. 피에타의 성모 마리아가 안고 있는 예수상을 별도로 설치한 것으로 계단을 타고 내려오면 ‘피에타’와 자연스럽게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는 콘셉트다.

총 673평(건평 1000평), 지하 1층, 지상 2층, 옥상 루프탑(3층)으로 구성된 스튜디오는 공식 개관하기 전까지 적잖은 우여곡절을 거쳐야 했다. 지난 2015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던 피터슨 선교사 사택 터이자 제약회사 신광약품의 건물이었던 이 곳을 매입한 이 작가는 작업실로 활용하기로 하고 신축 대신 리모델링을 택했다. 근대문화의 보물창고인 양림동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기존 건물을 그대로 유지하되 기능적으로 일부 시설을 보완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마음 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시민과 미디어아트가 만나는 허브를 꿈꿨던 그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차별화된 공간을 원했지만 자신의 구상을 실현해주는 건축가를 만나지 못했다.

“아무래도 제약회사 건물을 리모델링하다 보니 ‘틀’을 깨는 데 한계가 있었어요. 지인으로 부터 건축가 2명을 차례로 소개 받았는데 ‘참신한’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콘셉트들이어서 아쉬웠어요. 내가 제작한 신작들을 처음으로 소개하는 쇼케이스 역할도 하고,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미디어아트를 즐길 수 있고, 주민들과 소통하는 커뮤니티 기능도 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이 필요했거든요. 결정적으로, 미디어아트 플랫폼의 색깔에 맞는 ‘창의적인’ 설계를 만나지 못했어요. 적당히 ‘타협’할까 생각도 했지만 한번 건립하고 나면 쉽게 바꿀 수 없어 고민이 많았어요.” 

 

이이남 작가의 작업실 한켠에는 작품의 영감을 위해 수집한 다양한 다기들이 전시돼 있다.

2명의 건축가들에게 들어간 설계비가 만만치 않았지만 과감히 포기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구세주’를 만났다. 평소 친분이 있는 고 이원일(1960~2011) 독립큐레이터의 부인 임수미씨로 부터 박태홍 건축가(건축연구소 ‘유토’대표)를 소개받은 것이다. 이원일씨는 이 작가가 국제 미술계에 진출하는 데 교두보 역할을 했던 전시 기획자로, 그의 고충을 전해 들은 임씨가 서울에서 활동하는 박 건축가를 추천했다.

‘건축은 단순히 집을 설계하는 게 아니라 삶과 디자인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건축의 본질이다’라는 철학을 지닌 박 대표는 경기도 판교의 단독주택 프로젝트인 ‘소소헌’을 비롯해 상업건물에서 부터 일반 주택, 공공건물까지 굵직한 사업들을 맡아 역량을 인정받은 실력파다. 또한 차별화된 주상복합건물 프로젝트인 ‘리첸시아 방배’로 지난 2011년 ‘제29회 서울시 건축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작가는 박 대표가 제안한 설계안을 본 순간 마음이 움직였다. 무엇보다 건물 2층의 벽을 과감히 철거하고, 대신 중정 처럼 건물 중앙에 구멍을 낸 파격적인 설계는 그를 사로잡았다. 1~2층 사이에 나선형 계단과 유리창을 통해 자연광을 실내에 들이는 콘셉트는 무릎을 칠 만큼 참신했던 것이다. 박 대표를 만나면서 이이남 스튜디오 프로젝트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박 대표는 이 건물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되살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도 그럴것이 1980년 5·18민중항쟁 때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아놀드 피터슨 목사가 살았던 사택 자리였기 때문이다.

옛 신광약품 외관을 그대로 살려 리모델링한 스튜디오는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넓다. 건물 1층에는 대형 유리창을 설치해 야외에서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실과 카페를 배치했다. 스튜디오에 카페를 꾸민 건 시민들과의 매개 공간을 위해서다. 당초 건물을 리모델링 할때에는 창작 스튜디오와 전시실만 구상했는데 스태프들이 시민들이 이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대중적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것이다.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다 보면 건물 곳곳에 전시된 작품들에게 시선이 가는 부수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유명 화가 페르메이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모티브로 한 작품.

‘커피 한잔과 미디어아트를 바꾸는 공간’ . 이런 그의 바람은 적중한 듯 하다.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연인이나 지인, 가족들과 함께 찾은 시민들이 차를 마시며 작품과 공간 등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1층에는 8개 모니터로 구성된 ‘고전회화 해피니스’ 연작이 설치돼있고, 2층에서는 다채로운 디지털 병풍을 만날 수 있다. 특히 2층은 꽃과 나무들이 어우러진 야외 공간과 연결돼 있어 인기가 높다. 옥상으로 올라가면 탁 트인 양림동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작가는 옥상의 장소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앞으로 250평에 조각, 예술작품을 설치하고 잔디를 조성해 힐링 공간으로 가꿀 계획이다. 또한 외부 벽면에도 LED 미디어 월(Media Wall)을 설치해 야외에서도 미디어아트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 작가는 “이이남 스튜디오가 지역의 문화생태계를 풍성하게 하는 거점 공간 역할이 되길 바란다”면서 “양림동의 풍부한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자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양림동 골목비엔날레 등과 연대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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