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유연재기자

이기종 소장 “야구인생 25년 노하우로 최고의 야구장 만들었죠”

by 광주일보 2020. 11. 25.
728x90
반응형

[함평야구장 총괄관리]
선수·감독 활동 후 2014년 귀향…함평 4개 구장 관리
전주·군산 등 야구인 年 5만여명 찾아 전지훈련지로 인기

 

매일 아침 7시, 이기종(60·전남도야구소프트볼협회 부회장) 함평야구장 관리소장은 직접 기계를 몰고 운동장 흙을 고르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 소장은 지난 2014년부터 6년동안 함평야구장, 전남야구장, 함평리틀야구장, 함평나비베이스타운 등을 총괄 관리해 왔다. “아무리 좋은 운동장이라도, 관리하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그는 지금도 직접 운동장을 관리한다.

이 소장은 “나도 야구를 했기 때문에 야구장에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다”며 “집에 가면 여기저기 몸이 쑤시는데, 야구장만 오면 씻은 듯 낫는다. 좋아하는 일을 하니 그런가보다”며 웃었다.

함평이 고향인 이 소장은 평생 야구와 인연을 맺어 왔다. 광주일고와 원광대를 졸업한 뒤 실업 야구팀 한국화장품 선수로 활동했다. 1989년부터 25년 동안 광주일고, 원광대, 대불대, 경성대, 경주고, 한서고 등 전국을 돌며 고교·대학야구 코치·감독을 맡았다. 이후 고양 원더스에서 김성근 감독과 함께 일한 것을 마지막으로 2014년 귀향해 함평야구장에 왔다.

“어느 종목이든, 체육인들이 고향에 돌아와 지역에 도움 주곤 하잖아요. 저도 그랬지요. 지금도 지도자를 맡아 달라는 러브콜이 들어오곤 하지만, 우리 고향에 타 지역 야구인들이 많이 찾아와 함평의 자부심을 높여주는 게 더 좋습니다.”

이 소장은 2014년 문을 연 함평야구장뿐 아니라, 지난 2004년 개장한 전남야구장 건립에도 힘을 보탰다. 처음엔 개인적으로 부지를 구입해 야구장을 지으려다가, 함평군과 의견이 맞아 군립 구장으로 짓게 됐다고 한다.

그는 “당시는 광주·전남을 통틀어 야구장이 무등경기장 하나뿐이었고, 사회인야구도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아 관심도 적었다”며 “야구 하면서 운동장 없는 설움을 많이 받았던 터라 야구장의 필요성이 더 절실하게 느껴졌다”고 돌아봤다.

이 소장의 진심이 통했는지, 함평은 야구 명소로 거듭났다. 함평야구장은 해마다 5만명이 넘는 야구인이 찾아온다. 전남 지역은 물론 멀리 전주, 군산에서 찾아오기도 한다. 폐교(전 대동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만든 숙소(함평나비베이스타운)는 물론 식당, 웨이트장 등 시설도 갖춰져 있어 야구 전지훈련지로도 인기다.

이 소장은 지난 2017년 지역체육 발전·지역경제 활성화 공로를 인정받아 ‘함평군민의 상’을 받기도 했다.

이 소장은 “많은 사람들이 처음엔 ‘촌에서 야구장이라고 해봤자 울타리 쳐놓은 게 전부겠지’ 하다가도, 이곳 시설을 보고 깜짝 놀라곤 한다. 보람찬 순간이다”며 “내년에는 야구장을 하나 더 만들어서 대학야구대회, 전국대회 등 큰 대회도 유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생활체육이 활성화돼야 함평 야구도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가족끼리 와서 야구도 하고, 지역 특산물도 사가다 보면 야구장도 덩달아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더 많은 유소년, 생활체육 야구인들이 함평을 찾아올 수 있도록 힘쓰겠다”며 “그들에게 ‘운동장 편하고 좋더라’ 한 마디를 듣는 게 행복이다”고 덧붙였다.

/글·사진=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이기종 소장 “야구인생 25년 노하우로 최고의 야구장 만들었죠”

매일 아침 7시, 이기종(60·전남도야구소프트볼협회 부회장) 함평야구장 관리소장은 직접 기계를 몰고 운동장 흙을 고르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 소장은 지난 2014년부터 6년동안 함평야구장, 전남

kwangju.co.kr

 

황평주 전 국가대표팀 감독 “스포츠 클라이밍, 많은 사람들이 즐겼으면”

“육상에서 100m 단거리와 마라톤이 다르듯이, 스포츠 클라이밍은 다른 산악 활동과 달라요. 말 그대로 ‘스포츠’지요. 스포츠 클라이밍은 전문 스포츠단체로서 독립해야 합니다.”보성 출신

kwangju.co.kr

 

이형남 초대 관장 “국난마다 나라 지킨 호남 영웅들 보러오세요”

“‘약무호남 시무국가’라는 말이 있듯이,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호남 사람들은 분연히 일어나 항거하며 나라를 지켰습니다. 하지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호남 영웅들이 많지요. 기념

kwangju.co.kr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