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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예향

카세트테이프공장·양곡창고가 무한상상 예술촌으로

by 광주일보 2020.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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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전부터 전주와 완주는 문화적 도시재생의 교과서로 불리며 관광도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전주한옥마을로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을 유치했던 전주시는 문 닫은 카세트테이프 공장을 창작예술단지로 리모델링했는가 하면 완주군은 일제강점기 시절의 양곡창고를 책과 미술, 공연으로 가득 채운 삼례문화예술촌으로 가꾸고 있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 문화와 예술이 공존하는 팔복예술공장과 삼례문화예술촌의 현장속으로 들어가본다.

 

폐카세트테이프 공장에서 예술공간으로 재탄생한 전주 ‘팔복예술공장’. <사진=팔복예술공장>

◇ 전주팔복예술공장

팔복예술공장 입구에 서면 공장의 상징인 25m 높이 굴뚝에 적힌 ‘(株)쏘렉스’라는 빛바랜 글자가 선명하다. 공장 안쪽에는 빨갛고 검은 색상의 철제 구조물들이 방문객의 시선을 잡아 끈다. 오래전 사용했던 컨테이너 7개를 개조한 구름다리다.

세개의 동으로 이뤄진 팔복 예술공장은 먼저 두개의 공간(A·B동)으로 개관했다. A동은 창작스튜디오·전시장·써니카페가 들어선 예술창작공간, B동은 꿈꾸는 예술놀이터, 이팝나무홀, 다목적 야외광장, 써니 부억 등 교육공간이다. 창작스튜디오에는 현재 10여 명의 작가가 상주하며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A동과 B동은 거대한 붉은색 컨테이너 브릿지로 연결돼 자연스럽게 두 공간을 둘러 볼 수 있다.

 

본관 건물 1층 로비에 꾸며진 ‘팔복아카이브실’.

A동의 1층에서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건 ‘팔복 아카이브’실이다. 지금의 팔복예술공장을 탄생시킨 구 쏘렉스 공장의 흥망성쇠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짙은 회색 철판 위에 새겨진 전주 산업단지의 역사가 흑백사진, 수십 여개의 카세트테잎과 함께 50여 년 전으로 방문객을 이끈다.

연기가 꺼진 공단이 예술공장으로 되살아 나게 된 건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 지원사업’덕분이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쏘렉스 공장은 카세트테이프가 대중화되면서 아시아 곳곳으로 카세트테이프를 수출하던 지역의 내로라 하는 유망기업이었다. 하지만 CD시장이 급성장하는 시대의 흐름과 맞물려 쇠락하기 시작하면서 20년 동안 빈 공터로 방치됐다.

전주시는 1990년대 이후 가동이 멈춘 채 방치된 쏘렉스 공장에 국비 25억 원을 확보해 총 50억 원으로 기적의 씨앗을 뿌렸다. 팔복예술공장은 개관 이후 60여 개의 기관 및 단체가 방문했으며 1일 평균 250명이 다녀가는 등 전주의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양곡창고를 리모델링한 삼례문화예술촌의 전경.

완주 삼례문화예술촌

팔복예술공장에서 나와 북쪽으로 20분 쯤 달리다 보면 완주군 삼례읍이 나온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호남평야에서 수탈한 쌀을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실어 나르기 전 일시적으로 보관했던 양곡창고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삼례문화예술촌의 초입에 들어서면 ‘삼례농협창고’라는 글씨가 그대로 남아있는 건물과 양철지붕 등 고색창연한 모습이 편안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예술과 과학, 상상과 감성이 결합된 디지털 아트관을 마주한 순간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겉에서 보면 낡은 창고이지만 내부는 예술이 살아 숨쉬는, 삼례문화예술촌의 반전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방문객들을 가장 먼저 맞는 모모미술관은 일상에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는 힐링의 공간이다. 취재차 들렀던 날에는 버려진 생활용품과 산업자재를 예술작품으로 재활용한 ‘박인선 정크아트 초대전’이 열리고 있었다. 자동차의 부품과 낡은 주전자, 수저 등을 예술적 상상력으로 탄생시킨 정크아트들은 미소를 짓게 한다.

 

산뜻한 색감의 천막과 공연장이 어우러진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삼례문화예술촌이 개관하기전 만해도 이 곳은 일제 강점기 수난의 역사가 스며있는 어둠의 현장이었다. 당시 건립된 창고 5동과 1970~80년대에 지은 창고 2동으로 구성된 양곡창고는 지난 2010년 초까지 창고로 사용됐으나 전라선이 복선화 되고 철로와 역사가 옮겨 가면서 제기능을 잃었다. 게다가 2000년 대 초 전주 등 인근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주민들이 늘어나면서 한때 2만 여 명이었던 인구는 1만6000명으로 급감했다. 이 때부터 전주의 위성지역이 아닌 완주군만의 독자적인 색깔을 갖자는 움직임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쓸모가 없어진 삼례양곡창고의 활용방안은 완주군의 화두로 부상했다. 실제로 양곡창고 일대를 둘러싸고 아파트를 건립하자는 의견과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자는 견해가 팽팽하게 맞섰다. 수개월 간의 열띤 공방 끝에 어린 시절 이 곳에서 뛰어 놀았던 삼례 주민들의 추억을 되돌려 주자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재개발 대신 보존으로 가닥이 잡혔다.

양곡창고에 생명을 불어 넣은 건 예술이었다. 주민, 전문가, 예술인 등으로 구성된 TF팀은 1만1825㎡ 규모의 양곡창고 주변을 문화와 예술이 흐르는 예술촌으로 조성하기로 하고 24억 원의 예산을 들여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마침내 지난 2013년 6월, 삼례문화예술촌이 2년 만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3500여 평의 대지에 조성된 예술촌의 창고 8동은 모모미술관, 김상림 목공소, 소극장 시어터애니, 커뮤니티뭉치, 디지털아트관, 문화카페 뜨레, 삼례책마을, 책공방 북아트센터로 변신했다. 이처럼 역사의 어두운 현장을 문화 자산으로 활용해 지역을 재생시킨 삼례문화예술촌은 전북 관광의 대표주자로 자리잡았다.

/전주=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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