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굿모닝예향

소리꾼 장사익 (2019.12-예향)

by 광주일보 2020. 1. 29.
728x90
반응형

우리 감성으로 무르익은 소리꾼 장사익

“노래에 인생이 스며들어야 울림이 돼요”

 

 

소리꾼 장사익(70)은 우리 서정을 가장 한국적으로 노래하는 이다. ‘찔레꽃’과 ‘자화상’, ‘봄날은 간다’ 등 그의 노래에는 인생의 봄·여름·가을·겨울이 담겨있다. 대중들은 가슴 깊은 곳에서 폭발하듯 터져나오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울고, 웃는다. 그는 북한산 끝자락인 서울시 종로구 홍지동에서 20여년째 살고 있다. 최근 낡은 자택을 크게 수리하느라 집에서 가까운 오피스텔을 빌려 생활하고 있다. 창가에서 하루하루가 다르게 수채화를 그리듯 노랗고, 붉게 물드는 풍광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퍼진다.

 

 

장사익은 공연장에서 두루마기 의상 하나면 족하다. <김녕만>

그는 ‘노래’보다 ‘인생’을 먼저 배웠다. 45살에 16번째 찾은 자신의 길에서 비로소 꽃을 피웠다. 오랜 시간 담금질을 거친 그의 노래에는 인생의 봄·여름·가을·겨울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래서 득음(得音)한 소리꾼처럼 그의 노래세계는 누구보다 깊고, 더한 울림을 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가운데 젊은 애들은 꽃피는 봄만 생각해요. 꽃 피는 것만 노래해. 실은 무덥고 짜증나는 여름에 열매들이 크잖아요. 그 더운 날…. 이게 인생이라. 저는 나름대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음악 속에, 삶속에 풀어내서 ‘얼라! 저 놈이 내 얘기를 (노래로) 하네’ 울기도 하고, ‘맞어!’ 이런 식으로 공감을 한단 말이여. 그게 생명으로 이어지는 거지.”

 

 

장사익은 지난 2009년 환갑을 맞으며 42.195㎞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자신에게 스스로 주는 ‘선물’이었다. 고희(古稀)를 맞은 지난해에는 여느 때보다 의미있는 한 해를 보냈다. 2월에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 폐막식에서 강원지역 초등학생들과 함께 애국가를 부르는 영예로운 순간을 맞았다. 이어 11~12월에는 서울 세종문화회관과 광주 문예회관 등 전국 6개 도시 대극장에서 소리판 공연을 펼쳤다. 공연 타이틀은 ‘자화상(自畵像) 칠(七)이었다. 그에게 ‘자화상’은 어떤 의미일까?

“나름대로 꿈을 이루고 70되니까 60하고 또 틀려. 내가 7학년이 됐네. 야구로 치면 7회전이에요. ‘내가 제대로 살았나 한호흡 쉬면서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마무리 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번뜩 나는 거여. 7학년이 돼서 ‘내가 누구야’ 자각을 한거야.”

 

 

한글 흘림체로 쓴 '맨날 봄날'

1993년 어느 봄날, 40대 중반 나이인 장사익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꽃향기가 바람결에 실려 왔다. 늘 보던 장미꽃인가 했더니 향기가 없었다. ‘어디서 나지?’하고 찾아보니 장미꽃에 가려진 하얀 찔레꽃에서 향기가 발산되고 있었다. 그걸 보고 그는 울어버렸다. 영락없는 자신을 닮은 꽃이었다. 당시 태평소(새납)를 불고 다니던 그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백수’나 다름없었다. 그가 가사 말을 쓰고, 곡을 붙인 ‘찔레꽃’은 그의 아픈 청춘이 담겨있는 노래다.

 

 

2015년부터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는 장사익

장사익은 1949년 충남 홍성군 광천읍 광천리 삼봉마을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 3학년까지 웅변을 잘하기 위해 등교하기 전 산에 올라가 소리를 질러댔다. 자연스레 발성훈련이 됐다. 광천중을 졸업하고 15살에 상경해 서울 선린상고에 진학했다. 상고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며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3년간 유명 작곡가 사무실을 오가며 노래공부를 했다.

군 제대 후에 가수의 꿈을 접었다. 보험사와 가구점, 매제가 운영하는 카센터까지 15개의 직업을 전전했다. 그런 와중에도 기본 악기인 단소를 시작으로 대금산조와 정악피리, 태평소(새납) 등 정악(正樂)과 속악(俗樂)을 나름대로 익혔다.

 

 

2016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장사익 소리판-꽃인 듯 눈물인 듯>. <김녕만>

그는 1992년에 “내 꿈을 찾아서 가자. 앞으로 딱 3년만 내 뜻대로 살아보자” 결심했다. 태평소 연주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이듬해 전국 민속경연대회에서 태평소를 불어(결성농요)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또 1993년과 1994년에 전주 대사습놀이에 ‘공주농악’과 ‘금산농악’을 들고 출전, 태평소를 불어 2년 연속 장원을 차지했다. 태평소 연주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이광수 사물놀이패(굿패 노름마치)에 합류해 태평소를 불었다.

1994년 6월, 김덕수와 이광수가 재결합해 예술의 전당 음악당 한 무대에 섰다. 공연을 마치고 뒤풀이에서 그는 김덕수 패 임동창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대전 블루스’ 등 가요 여러 곡을 불렀다. 그의 권유로 장사익은 1994년 11월초 서울 홍익대앞 예(藝) 소극장에서 첫 소리판 ‘하늘가는 길’을 열었다. 16번째 찾은 길이 그가 세상에 태어난 ‘존재이유’임을 깨달았다. 그동안 걸어왔던 컴컴한 밤길이 ‘허송세월’만은 아니었다. 그가 노래하는 길을 튼실하게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장사익의 1~9집 앨범. 김녕만 다큐 사진가가 촬영한 90도로 허리굽혀 인사하는 장사익을 표지로 한 2009년 5월 공연 실황앨범과 사진집 '장사익'.

장사익의 노래는 ‘카타르시스’(catharsis·정화) 효과를 준다. 그는 ‘하늘로 돌아가는’ 이들의 영전에서도 노래를 한다. ‘한국 현대 정치사의 풍운아’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경제학자 정운영, 사진가 김희중, 작가 이청춘, 진도북춤 명무(名舞) 박병천 등 여러 상가에서 ‘봄날은 간다’, ‘황혼길’, ‘귀천’(歸天) 등을 불렀다.

“내 하찮은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위안을 받고, 치유가 되면 내가 엄청나게 인생을 잘 산거죠. 바로 인생은 길 찾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노래는 ‘내 삶의 존재이유’구나 싶습니다.”

 

 

타악기 연주가 김대환 선생의 권유로 서도(書道)에 심취한 장사익

올해로 노래인생 25년을 맞은 그는 앞으로 어떤 노년의 계획을 세우고 있을까?

“살면서 느낀 얘기를 소소하게 풀어내는 거지 딴거 크게 없어. 70대 중반은 어떤 모습일까? 건강이 허락한다면 80대는 어떤 모습일까? 또 허락한다면 내가 90대 삐걱거리는 모습으로 내일모레 죽음을 앞에 두고 어떤 소리를 낼 것인가? 그때그때 바라보는 인생을 큰 게 아니라 조용하게 그렇게 하고 싶어요. 이게 진짜 노래라고.”

 

 

글 송기동 기자 사진 송기동, 장사익·김녕만 작가 제공

 

 

 

-본문 중에서-

(전문 보기는 ‘월간 예향’ 지면에서)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