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풋
석 민 재
군함처럼 큰 발을 끌고
아버지가 낭떠러지까지
오두막집을 밀고 갔다가
밀고 왔다가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스텝을 맞추며
말기 암, 엄마를 재우고 있다
죽음을 데리고 놀고 있다
죽을까 말까 죽어 줄까 말까
엄마는 아빠를 놀리고 있다
아기처럼 엄마처럼
절벽 끝에서 놀고 있다
석민재 『엄마는 나를 또 낳았다』, 파란刊, 2019.
가족이란 울타리는 어떤 무서운 공격도 막아주는 튼튼한 방공호이다. 가족을 더 넓은 단위로 확장하면 사회와 국가로 확장되고 가정의 그것처럼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를 가진다. 국가가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세월호에서 보여준 것처럼 국가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빅풋」은 거인의 발이다. 거인은 가부장적 권위를 가진 아버지로 보여진다. 「빅풋」에서 보여주는 아버지의 이미지는 가족을 낭떠러지로 몰고 가는 존재다. 낭떠러지에 위치한 가정은 위태롭기만 하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자신의 구령에 맞춰 살기를 강요한다. 말기암에 걸려 죽어가는 어머니는 아버지의 강압에 죽는 것 외에는 저항할 방법이 없다. 이를 우리사회로 확장으로 하청업체에 단가를 낮추라고 강요하는 대기업과 하급자의 인권을 짓밟는 군대의 일상화된 폭력이 보인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르게 만드는 힘은 시민들이 선출한 국가 권력이다. 국가가 제 기능을 못한다면 그 나라 국민의 미래는 없다. 권력에 짓밟힌 국민이 사는 집은 낭떠러지에 선 오두막이다. 석민재의 「빅풋」은 권위적인 아버지 아래 위태위태하게 버티는 가족의 비극을 낭떠러지에 내몰린 오두막집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석민재 시인은 이를 해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창수>
시인, 1970년 전남 보성출생. 2000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 『물오리사냥』, 『귓속에서 운다』.
'굿모닝예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화자산된 유명 미술관 컬렉션, 도시의 품격을 높이다 (0) | 2020.03.03 |
---|---|
카세트테이프공장·양곡창고가 무한상상 예술촌으로 (0) | 2020.02.25 |
나의 애송시-허형만의 ‘녹을 닦으며’ (2019.9-예향) (0) | 2020.01.30 |
소리꾼 장사익 (2019.12-예향) (0) | 2020.01.29 |
[예향 초대석] 함인선 광주광역시 초대 총괄 건축가 (0) | 2020.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