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피카소의 ‘게르니카’….
평소 미술에 조예가 깊은 편이 아니더라도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세기의 걸작들이다. 학창시절 미술교과서에서 접했던 이들 작품들은 미술애호가들이라면 ‘버키리스트’에 꼽을 만큼 마음을 설레게 한다. ‘모나리자’와 ‘진주귀걸이를…’를 소장하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과 헤이그 마우리츠하우스 미술관은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이처럼 빼어난 컬렉션과 화려한 건축미를 보여주는 미술관(박물관)은 문화관광의 하일라이트다. 그래서인지 근래 국내외 미술관들은 지역민들의 문화향유를 충족시키고 관광객들을 불러 들이기 위해 차별화된 컬렉션을 가꿔가고 있다.
‘색깔있는’ 컬렉션으로 도시의 품격과 가치를 높이고 있는 국내미술관을 소개한다.
# 국립현대미술관
우리에겐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으로 잘 알려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해 개관 50주년을 맞았다. 1969년 10월 20일 경복궁 뒤뜰 옛 조선총독부 미술관에 공식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술관이라는 말이 무색한 ‘무늬만’ 미술관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미술관의 꽃이라고 하는 소장품은 한 점도 없었다.
하지만 50년이 흐른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은 ‘흑역사’를 찾기 힘든 국내 최고 권위를 지닌 미술관으로 우뚝 섰다. 본관인 과천 미술관을 필두로 서울관, 덕수궁관, 청주관 등 총 4관에서 연간 30여건의 다양한 전시를 선보이면서 규모면에서는 아시아의 넘버 1을 자랑하고 있다. 단 한점도 없이 출발했던 소장품은 국내외 작가의 작품 8천417점(2019년 9월 기준)에 이른다.
8천417점의 소장품에서 짐작할 수 있듯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유명작가들의 대표작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올해 초 미술관은 191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10년 단위로 분류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300’을 발간해 주목을 받았다. 이를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면 1910년대에는 조석진(1853~1920)이 갈대(노) 숲을 배경으로 땅과 하늘의 기러기(안) 떼를 묘사한 작품 ‘노안’(蘆雁·1910)을 시작으로 안중식의 ‘산수’(1912), 한국 첫 서양화가인 고희동의 ‘자화상’(1915) 등 3점이 수록됐다. 1920년대는 어진화사로 유명한 채용신의 ‘고종 황제 어진’을 비롯해 김은호·이상범·김주경·김종태 등의 8점, 1930년대는 이인성·도상봉·김기창·김복진·김환기·오지호 등의 16점이 선정됐다.
1940년대는 임군홍과 허백련·이쾌대·허건 등의 14점이, 1950년대는 사진가 임응식의 사진 ‘구직’을 비롯해 이중섭·장욱진 등의 32점이 실렸다. 1960년대는 박수근의 ‘할아버지와 손자’ 등 25점이, 1970년대는 이우환의 ‘선으로부터’ 등 16점, 1980년대는 백남준의 ‘다다익선’ 등 50점, 1990년대는 52점, 2000년대는 68점이 엄선됐다. 2010년대에는 24점의 작품이 실렸는데 가장 근작(2017년)은 강요배의 유화 ‘불인’과 송상희(49)의 비디오 설치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 작품이다.
# 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공간
지난 2015년 부산시립미술관 인근에 문을 연 ‘이우환 공간’은 일본 나오시마에 이은 두번째 이우환 개인미술관이다. 이우환 작가가 직접 작품을 위해 만든 공간으로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검정 바탕에 전면 통유리를 설치한 직육면체 건물(지하 1층, 지상2층 연면적 1400㎡ 규모)은 절제와 긴장감이 느껴지는 하나의 작품이다. 건물에는 흔한 표지석이나 현판 조차 없고 ‘미술관’ 명칭을 사용하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공간 기본 설계부터 건물 높이와 공간 구성, 작품 배치를 비롯해 마감재, 조명, 집기에 이르기까지 이 작가의 꼼꼼한 손길이 닿아있다.
1층에는 자연석과 철판으로 만든 ‘관계항-좁은문’, ‘물(物)과 언어’ 등 작품 8점이, 2층에는 회화작품 ‘선으로부터’, ‘점으로부터’, ‘바람과 함께’ 등 비교적 신작 위주 작품 13점이 걸려 있다. 또한 앞마당에는 ‘관계항-안과 밖’, ‘관계항-길 모퉁이’ 등을 설치해 공간을 완성했다.
이우환 공간이 개관한 이후 부산 시립미술관은 전국 각지에서 밀려드는 관람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개관 이후 평일은 150여 명, 주말은 300여 명이 다녀가는 등 평소보다 2∼3배나 방문객이 늘어났다. 특히 지난해 BTS의 리더 RM이 부산 팬미팅 공연을 앞두고 다녀간 후에는 세계적인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 뮤지엄 산(SAN)
최근 강원도를 대표하는 문화관광의 거점 공간은 원주의 ‘뮤지엄 산’(SAN)이다. 사진작가 윤광준이 지난해 출간한 ‘내가 사랑한 공간들’에서 컬렉션 뿐만 아니라 건물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미술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패랭이꽃밭 한 가운데 자리한 세계적인 조각가 마크 디 수베로의 대형 모빌조각 ‘제라드 먼리 홉킨스를 위하여’가 시선을 끈다. 뮤지엄 본관까지 이어지는 이들 가든의 전체 길이는 700m. 이처럼 대자연의 품에 안겨 있는 듯한 뮤지엄 산은 꽃과 물, 돌, 빛, 예술이 빚어낸 ‘전원형 미술관’이다.
무엇보다 관람객의 탄성을 자아내는 건 워터가든과 뮤지엄 본관으로 이어지는 돌다리 위에 설치된 조각작품이다. 대형금속파이프를 연결해 사람 인(人)자를 연상시키는 형상의 ‘아치웨이’(Archway·알렉산더 리버만 작)로 마치 미술관 건물이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태양을 닮은 강렬한 붉은 색이 인상적이다.
해발 275m에 둥지를 튼 미술관은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설계로 지난 2013년 한솔뮤지엄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이듬해 현재의 명칭으로 바뀐 뮤지엄 산은 대지 22만 평, 부지 7만 1172㎡로 국내 최고의 높이와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전시공간은 5445㎡, 총 관람거리는 2,3km. 제대로 둘러 보려면 2시간이 소요된다. 뮤지엄 산의 컬렉션은 백남준의 ‘1937 DESOTO’, 제임스 터렐의 전시관인 작품 ‘간츠펠트’ 등 면면이 화려하다.
# 제주본태박물관
언제부턴가 제주도는 미술의 섬으로 불린다. 어느 곳을 가든지 각양각색의 박물관과 미술관들을 볼 수 있으니 그럴 만하다. 제주의 역사를 보여 주는 자연사박물관에서부터 동심을 설레게 하는 곰인형박물관 등 줄잡아 90여 곳이나 된다. 그중에서도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에 자리한 본태박물관은 매력적인 컬렉션으로 제주의 문화지형을 업그레이드 시키고 있다.
‘본래의 형태’란 뜻의 본태(本態)박물관은 지난 2012년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해 개관 당시부터 화제를 모았다. 수백여 점의 컬렉션 가운데 설치작품인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과 두 평 공간에 영구 설치된 ‘무한한 거울방-영혼의 광채’은 포토존으로 인기가 많다. 특히 박물관이 6억 원을 들여 구입한 ‘무한한 거울방’은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치 3차원의 세계에 떠 있는 것 같은 환상을 일으킨다. 국내에 단 1점뿐인 이 작품을 보기 위해 근래 방문객이 2∼3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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