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학교·복지센터 찾아 다문화 문화 이해 교육 스리랑카 출신 윤마두 씨]
2001년 귀화…어린이집 교사하며 외국인근로자·불법체류자 통·번역
직접 겪은 이주여성 한국 정착·육아기 교육 소재로…어울림 세상 꿈 꿔
완도군에는 특별한 ‘우리 동네 선생님’이 있다.
바다 너머 타지에서 태어났지만,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고 앞장서서 문화 이해·교류를 주도하는 결혼이주여성들이다.
최근 윤마두(여·39)씨 등 결혼이주여성 4명이 선생님으로 변신해 유치원, 초·중·고등학교, 아동복지센터 등을 찾아가 문화 이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윤씨 등은 완도군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지난 6일부터 시작한 ‘다이음 사업’으로 교단에 서게 됐다. 이들은 지난 6일 완도유치원을 시작으로 우리어린이집, 노화초 병설유치원, 완도중 등에서 수업을 했다.
윤씨는 “이주여성으로서 느끼기에, 아직 우리 사회에는 다문화가 많이 알려져있지 않다”며 “우리 이주여성이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 문화 교육 선생님으로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윤씨는 스리랑카 출신으로, 현재 완도에서 어린이집 교사로 활동 중이다. 지난 2018년부터 전남도 ‘찾아가는 어린이집 다문화이해교실’ 강사도 맡아 왔다.
“매번 수업할 때마다 기쁘고, 만족스러워요. 이주민으로서 한국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게, 예전엔 꿈에도 못 꿨을 일이거든요. 이주민들과 그 자녀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교사로 나서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었다.
10여년 전 큰 딸이 초등학교를 다녔을 적 일이다. 딸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놀림을 많이 받았다. 이 사실을 부모에게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앓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극복한 계기가 윤씨의 ‘문화 수업’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스승의 날, 학교에 와서 스리랑카와 다문화에 대해 소개해 주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 수업으로 아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딸이 놀림 당하는 일도 없어지면서 친구도 많이 생겼어요. 내 아이뿐 아니라 수많은 이주민 아이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활동이었죠.”
윤씨에 따르면, 그는 전남도내 유일한 스리랑카 출신 결혼이주여성이다. 지난 2001년 귀화했으며, 동향 네트워크도 없고 이주여성 지원도 적었던 때라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곡절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한국어·한글을 배우기조차 쉽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싱할라어(스리랑카어)판 교과서나 번역서가 거의 없었던 터라 한글 원문을 영어로 중역해가며 어렵사리 배웠다고 한다.
“2010년대 들어 완도에 다문화센터가 생기면서 한글 교실이 열리는 등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 덕에 ‘다문화 활동가’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윤씨는 현재 완도경찰서, 다문화센터 등과 연계해 외국인근로자, 불법체류자 등을 통·번역해 주는 업무도 담당하고 있다. 한때는 광주까지 출장 통역 업무를 했다고 한다.
윤씨는 새로 한국을 찾아오거나, 적응 중인 이주 여성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주저앉지 말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라”고 조언했다.
“다문화 여성분들, 한국어·한글을 못한다며 집에 숨어만 있지 마세요. 저도 네 아이의 엄마로서 ‘단단하게’, ‘힘 있게’ 살고자 일하고 있습니다. 자신감을 갖고,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겠다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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