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윤곽…예술은 어떻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서구의 문화예술을 다룬 책 가운데 일반인에게 알려진 두 권을 고르라면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와 케네스 클라크의 ‘문명’을 들 수 있다. 전자는 1950년 초판이 발간된 이후 미술에 대해 가장 많이 알려진 책이며 후자는 서양 문명의 역사를 살펴본 의미있는 저작이다.
두 책은 공통적으로 서구가 문화예술의 중심지라고 본다. 당연히 주변부 세계에서 비판이 제기된다. 곰브리치는 유연하게 포용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클라크는 동양의 언어를 모르기에 동양의 문명을 다룰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일반적으로 ‘문명’의 사전적 의미는 “사회의 여러 가지 기술적, 물질적인 측면의 발전에 의해 이루어진 결과물”을 뜻한다. 당연히 물질과 연계된 문화적인 부분을 포괄한다.
서양 문명을 가로지르는 역사 이면에는 위대한 예술가와 작품이 놓여 있다. 그렇다면 문명이란 무엇이며, 예술은 어떻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일까.
영국의 미술사학자 클라크의 ‘문명’은 서양 문명의 역사를 공시적, 통시적으로 다룬 책이다. 클라크는 과거로부터 이어지는 선형적인 관점과 동시대에서 여러 지역을 아우르는 관점을 취했다. 이번에 발간된 ‘문명’은 지난 1969년 케네스 클라크가 진행한 BBC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단행본으로 엮었다.
저자는 윈체스터와 옥스퍼드대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30세 나이에 내셔널갤러리 관장으로 발탁될 만큼 전도유망한 미술사학자였다. 영국 문화위원회 의장을 역임했으며 1969년 다큐멘터리 ‘문명’을 제작해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클라크는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문명을 기술한다. 건축을 비롯해 조각, 회화, 음악, 문학, 철학 등에 걸쳐 저자의 심미안은 빛을 발한다. ‘예술 과학 철학, 그리고 인간’이라는 부제는 문명의 총체와 정신문화 그리고 인간을 포괄한다는 점에서 한편의 대서사라 할 수 있다.
책에서 가장 두드러진 미덕은 저자가 서양 문명의 ‘양극성’(polarity)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양극성은 “반대되는 주장이나 태도, 존재 등이 서로 맞서면서 동시에 상대방을 자기의 존재 조건으로 하는 성질”을 뜻한다.
클라크가 고딕 성당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채롭다. 아름다운 성자들의 형상에만 머물지 않고 그 시대가 ‘추한 것’으로 정의했던 괴물들 쪽으로 향한다. 센 강을 거슬러 가는 바이킹의 기괴한 뱃머리가 독창적이며 밀도있는 예술작품이지만 야만의 편협함이 낳은 산물임을 지적한다.
바로크는 가톨릭교회의 감정적인 열망을 표현한 데 반해 로코코는 자극적이며 세속적이었다. 로코코는 고대풍 사유와 질서보다는 자유분방함에 방점이 놓여 있었다. 조개껍데기나 해초 등 이중 곡선을 이루는 자연물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아카데믹한 양식에 대한 반작용이라 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 ‘죽어가는 노예’에도 그러한 특징이 투영돼 있다. 조각상에 구현된 육체는 베토벤의 9번 교향곡 도입부처럼 대리석에서 울려나오고 안으로 가라앉는다는 것이다. 표면이 거친 대리석은 주의를 집중시키면서도 조각된 인물을 가둔 것처럼 보이게도 한다. 손발이 묶이지는 않았지만 죄수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조각상은 “미켈란젤로가 무엇보다도 깊이 몰두했던 문제, 즉 스스로를 물질에서 해방시키려는 영혼의 고투를” 드러내는 것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한편 책을 옮긴이는 서울대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한예종 예술전문사 미술이론 과정을 마친 이연식이다. 그는 “클라크는 문화와 예술의 산물에 대한 무지막지한 파괴를 문명의 적으로 규정하여, 그늘이 사물의 윤곽을 드러내듯 문명의 윤곽을 드러내도록 한다”며 “그는 추상적인 기준보다는 구체적인 작품과 건축물, 인류가 지성과 갈망으로 쌓아온 것들을 펼쳐 보여주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뭣인지에 대해 거듭 묻는다”고 언급한다. <소요서가·2만8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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