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경 소설가, 5·18대하소설 ‘불어오는 바람’ 9권 펴내
30년 집필…80년 당시 광산동 거주 금남로서 봉사 활동
처절하고 참혹했던 광주 ‘눈’으로 기억하고 노트에 담아
“집필하는 기간만 따지면 꼬박 30년이 세월이 걸렸습니다. 1980년의 체험이 소설로 완료되기까지는 4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구요. 저는 왜곡된 역사를 소설로 교정하고 복원하고 싶었습니다.”
70세가 넘은 소설가의 표정에는 감회가 어렸다. 첫 눈에도 가냘프고 왜소해 보이는 체구였지만 특유의 강단이 느껴졌다.
최문경 소설가가 5·18 44주년을 기념하는 대하소설 ‘불어오는 바람’(9권, 문예바다)을 펴내 화제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최 작가는 “5·18은 당시 신군부가 민주화운동에 나섰던 광주 시민들을 총칼로 학살한 사건”이라며 “저들은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시민을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했다.
근기가 밴 목소리를 타고 마치 역사적 현장에 있는 듯한 떨림이 전해왔다. 작가는 80년 5월 당시 광산동에 살았다고 한다.
“80년 5·18 때, 전남도청 지번은 광산동 1번지였습니다. 제가 살던 집은 광산동 72번지였죠. 도청 옆 광주은행 남부지점 뒤쪽으로 헬기가 날고, 총알이 우리집 지붕위로 날아다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공수부대원들이 젊은 남자들을 군용차량에 싣고 가고 ‘폭도‘로 간주해 사살하고 암매장했던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 작가는 당시 남편과 아이들 셋은 봉선동 친척집으로 피신 갔다고 했다. “자신은 도청 앞 금남로 현장에서 주먹밥을 나르고, 헌혈, 상무관 시신확인 봉사자로 활동하기도 했다”는 말에서 당시의 모습이 그려졌다.
10일 간의 광주민중항쟁기간 신군부가 선량한 광주시민을 학살했던 만행은 고스란히 소설의 질료가 됐다. 작가는 당시 처절하고도 참혹한 광주를 ‘눈’으로 기억하고, 노트에 담았다. 소설은 광주민주화운동 발발에서부터 전두환 정권이 노태우를 앞세워 직선제 요구를 받아들이기까지, 그리고 군사정권이 하강 곡선을 그리는 지점까지 아우른다.
이번 작품은 원고지로 1만5000매가 소요됐다. 당초 15명의 주인공 이야기를 2만매로 썼지만 개작하는 과정에서 조금 줄었다. 모두 11명의 인물을 주인공 시점으로 형상화한 점이 특징이다.
올해로 5·18광주민주화운동이 44주년이 흘렀는데, 소설 완간이 늦어진 이유가 궁금했다. 이에 대해 작가는 “91년 표현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92년부터 광주시민일보(현 시보)에 5·18 관련 이야기를 일부분 연재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30여 년이 흘러 마침내 대하소설이라는 ‘그릇’에 ‘광주’의 이야기가 담기게 된 거였다.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인물은 모두 11명. 김득수, 권덕룡, 박기종, 예당댁, 윤효정, 송광민, 임규정, 염창호, 염평식, 강민정, 득량댁이 그들이다. 작가는 일반적인 대하소설이 취하는 서사적 줄거리 방식보다 등장인물의 행적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특히 작가는 당시 수집한 사료에 소설적 상상력과 허구를 가미했다. 공간적 배경은 보성군 문덕면 주암호 수몰지구가 중심이며 이곳에 토대를 둔 인물들을 취재했다. 사실과 허구는 오랫동안 작가의 내면에서 ‘발효’라는 시간과 맞물려 소설로 전이됐다.
문학평론가 김종회 전 경희대 교수는 “이 소설 이전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은 단편·장편·대하소설을 막론하고 부지기수로 많다. 홍희담·최윤·임철우·한강 등의 작가를 별반 어려움 없이 떠올릴 수 있다”며 “여기에 최문경이 하나의 획을 더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문학적 성과를 제시한 것은, 결코 가볍지 않은 문학사적 진전이다”고 평한다.
여고시절부터 소설을 썼다는 작가는 지난 99년 지방 신춘문예로 등단 후 광주전남소설가협회 회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후 서울로 이주했다가 지금은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창작을 지속하고 있다. 지금까지 ‘장마는 끝나지 않았다’, ‘붉은 새’ 등 10권의 장편소설과 ‘파랑새는 있다’ 등 단편소설집을 펴냈다. 광주문학상, 문예바다 소설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최 작가는 소설을 쓰게 된 계기로 “어린 시절 두 살 아래 여동생의 죽음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과 여동생이 홍역을 앓았는데 당시 여동생이 “언니야, 너는 살아야 한데이, 내가 대신 죽을 끼다”라는 말을 남기고 하늘나라로 떠난 것이 평생 마음의 짐으로 남았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건강이 닿는 한 창작을 지속할 작정이다. 아직 출간하지 못한 장편소설이 10권 분량이나 된다는 말에서 문학에 대한 열망의 깊이가 느껴졌다.
“소설 쓰기는 신성한 행위입니다. 작품을 구상하면서 일찍 떠난 여동생의 환영과 인물들을 만날 수 있고 쓰는 시간만큼은 무의미감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창작과 연관된 세계가 제게는 의미 있어 보이고, 나아가 그것은 의미 있어 보이는 구원의 시간으로 환원되기 때문이죠.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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