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화로 만나는 조선과 유럽의 흥미로운 문화 교차점
김홍도의 ‘길쌈’과 빈센트 반 고흐의 ‘실 잣는 사람, 밀레 이후’는 유사한 점이 많다. 시공간은 다르지만 여인들이 작업을 하고 있으며 여러 공정을 거쳐야 실을 얻을 수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조선의 여인은 앉아서 일을 한다. 배 한 필을 얻기까지 11개의 공정을 거쳐야 한다. 서양의 여인은 입식생활에 맞춰 의자에 앉아서 물레를 돌리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반세기 이전만 해도 길쌈의 모든 과정은 집안에서 이루어졌다. 길쌈은 동서양 모두 여인들의 중요한 가사 노동 가운데 하나였다. 고흐 또한 가난한 노동자에게 강한 애착을 느꼈다. 베틀에서 작업을 하는 직공의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이 여러 장 있다.
김홍도와 고흐의 풍속화에는 소시민 모습이 담겨 있다. 길쌈이 얼마나 힘든 노동이었던지 예로부터 전해오는 여인들의 노래가 말해준다. 다음은 경북 김천시 남면 운봉에서 수집된 ‘여성 탄식가’ 일부다.
“여자몸이 되어나서 인들 아니 원통한가 누대종가 종부로서 봉제사도 조심이오 통지중문 호가사에 접빈객도 어렵더라 모시낳기 삼베낳기 명주짜기 무명짜기 다담일어 베를보니 직임방적 괴롭더라”
동시대 조선과 서양에는 그 나름의 공통성이 있다. 앞서 언급한 김홍도의 ‘길쌈’과 고흐의 ‘실 잣는 사람, 밀레 이후’의 그림은 시대의 단면을 보여준다.
조선과 유럽의 대중 풍속을 비교한 ‘조선과 서양의 풍속화, 시대의 거울’은 흥미로운 책이다. 단순한 풍속화를 넘어 문화의 교차점을 그림의 대비를 통해 보여준다. 저자는 리움미술관 도슨트로 15년간 활동했으며 ‘삶의 미술관’, ‘독일에서 온 편지 그리고 사랑’을 펴냈던 장혜숙 작가다.
저자는 잊힌 옛 이야기들, 한국전쟁 후까지도 남아 있던 우리 옛 모습을 소환했다. “눈으로 본 사람이 전하지 않으면 그 모습이 파묻힐 것 같은 안타까움” 때문에 책을 썼다고 한다.
윤덕희는 아버지 윤두서가 개척한 풍속화를 이은 인물이다. 윤덕희의 아들 윤용도 가풍을 이었는데, 이들 가문은 책을 통해 예술과 정신을 후대에 전승했다. 녹우당에는 책이 많았는데, 저자에 따르면 윤두서의 ‘미인독서’와 윤덕희의 ‘독서하는 여인’은 녹우당 서책들이 만든 그림이라는 것이다.
‘독서하는 여인’은 단정한 차림의 여인이 개다리 의자에 앉아 독서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기다란 파초 잎을 배경으로 앉은 여인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다. 무릎에 책을 펼치고 책을 읽는 여인에게서 지성과 기품이 배어나온다.
저자는 ‘조선의 여인과 서양의 소녀가 읽는 책은 어떤 내용일까?’라는 질문으로 서로 다른 시대의 풍속화에 대한 호기심을 이끌어낸다.
김득신의 ‘밀희투전’은 당대 금지된 투전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밤을 지샐 만큼 투전에 빠진 사내들 모습은 돈에 탐닉하는 시대상을 보여준다. 김득신은 4명의 모습을 다르게 표현함으로써 투전판에 몰입된 심리를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폴 세잔의 ‘카드게임 하는 사람들’은 인물들과 사물의 공간적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세잔의 카드놀이 그림은 도박이 아니라 김득신의 ‘밀희투전’에 나오는 두둑한 돈주머니도 없다. 그러나 여러 소품을 그림으로써 주변 묘사를 꼼꼼히 한 것은 김득신의 그림이나 세잔의 그림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다.
이밖에 책에는 강희언의 ‘석공공석도’와 존 브렛의 ‘돌 깨는 사람’, 조영석의 ‘이 잡는 노승’과 바르톨로메 무리요의 ‘거지 소년’, 신윤복의 ‘쌍검대무’와 장레옹 제롬의 ‘전무’ 등을 대비한 이야기도 수록돼 있다. <동연·3만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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