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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류빈기자

[시네필과 함께하는 영화산책] 쉐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by 광주일보 2024.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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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물 같은 사랑, 불 같은 연인들의 단꿈
블록버스터 ‘웡카’ 주연 샐리 호킨스의 이색적 필모

‘쉐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비정형의 ‘물’이야말로 사랑의 모양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잔잔한 연애를 ‘호수’에 은유하거나, 신의 초월적인 아가페를 ‘성모의 눈물’에 빗댄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굴곡진 그릇에 물을 담듯,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에 맞춰 나의 형태를 무수히 변화시켜야 한다. ‘사랑의 형상은 물’이라는 명제에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쉐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양서류 인간을 모티브 삼아 기괴한 사랑의 일면을 그려 낸다.

영화에서 아마존에서 ‘신’으로 추앙받던 어인(더그 존스 분)과 언어장애를 앓는 청소부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1960년대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의 비밀 실험실에서 처음 만난다. ‘실험체’로 잡혀온 탓에 이들의 대면은 썩 유쾌한 상황이 아니다. 청소부 엘라이자는 연민과 호기심을 갖고 몰래 수조로 들어와 삶은 계란을 주면서 ‘괴물’과 친밀감을 쌓는다.

그러나 엘라이자의 목에 있는 아가미 같은 상처, 어인족과 같이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없다는 점 등은 서로에게 끌림을 준다. 아웃사이더, 사회적 언더독이던 그녀의 소외받던 마음에도 작은 울림이 생겨난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내 앞에 실존한다는 믿음은, 분명 그 자체로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엘라이자를 질타하는 주변인에게 “나도 그 사람처럼 입을 뻥긋거리고 소릴 못 내요. 그럼 나도 괴물이에요?”라고 반문하는 대목은 아주 사소한 클라이맥스다. 영화는 그렇게 사랑의 모양을 포착해 간다.

실험실 수조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교감한다.

 

주인공인 샐리 호킨스는 전국 극장가에서 상영 중인 블록버스터 ‘웡카’에서도 주연을 맡고 있다. 이에 앞서 델 토로 감독은 2014년부터 그녀에게 “‘쉐이프 오브 워터’ 주연을 맡아달라”는 러브콜을 보냈다는 후문. 호킨스가 보여준 수려한 연기력은 ‘쉐이프 오브 워터’를 제75회 골든글로브 작품상, 음악상 수상으로 이끌었고 델 토로 감독을 고유한 예술적 성취를 이룬 ‘오퇴르(auteur)’ 반열에 올렸다. 호킨스를 주연으로 선택한 감독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한 셈이다.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나와 다른 ‘타자에 대한 존엄’으로 압축된다. 희로와 애락, 선악과 호오가 공존하는 복잡다단한 세계에서 물 같이 부드러운 마음이 꼭 필요하다는 점을 환기한다.

한편 주인공들의 가장 강력한 안타고니스트(대립자)는 실험실 관리자인 스트릭랜드 역을 연기한 마이클 섀넌이다. 그는 양서류 인간에게 지능, 공감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우주 개발에 이용하려는 계략을 펼친다.

실험실 측은 미소 과학전쟁이 한창이던 20세기 중반인 탓에 어인을 ‘해부’하기로 결정한다. 이 소식을 듣고 엘라이자는 어인을 납치해 ‘탈출’을 감행하고, 사건은 미스터리 스릴러나 느와르와 같은 분위기로 빠져든다.

안타고니스트가 주인공들에게 시련을 주면서 오히려 이들의 사랑을 키우는 촉매로 작용하는 방식은 예측 가능한 내러티브다. 총 123분의 긴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인 만큼, 스트릭랜드나 호프 스테틀러 박사 등의 욕망까지 다각도로 초점화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도 있다. 작품에 ‘호불호’ 수식어가 붙는 것도 이 같은 이유일 터다.

그럼에도 괴물과 인간의 전위적 사랑을 관객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서사화한 것은 흥미롭다.

두 주인공은 처음에는 잘 맞지는 않았지만 ‘수화’를 매개로 가까워진다. 언어의 벽을 초월한 이들의 ‘밀어’는 타자성의 한계, 종과 종의 차이, 아(我)와 비아(非我)의 근본적 한계 등을 넘어서 ‘교감’을 이룬다. 양서류 인간은 천재적 지능으로 빠르게 수어를 터득했고 엘레이자에게 사랑의 마음을 준다. 물론 엘레이자도 마찬가지.

‘욕실 수중 러브씬’. 물을 가득 채우고 사랑을 나누던 이들은, ‘밀회’가 발각되자 오히려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왜일까.

 

가장 압권인 장면은 욕실에서 펼쳐지는 ‘수중 러브씬’이었다.

엘레이자는 욕실 문을 닫고 천장까지 물을 가득 채운 뒤, 그 속에 잠겨 어인과 사랑을 나눴다. 울퉁불퉁한 괴물과 부드러운 인간이 만드는 나신의 곡선은 서로 다르지만, 굴곡에 맞춤한 ‘물’은 어떤 이불보다도 ‘연인’을 포근하게 감쌌다.

밀회 장면을 들킬 때조차 흐뭇한 표정을 짓던 엘레이자의 표정이 뇌리에 남는다. 어인의 등근육을 꼭 끌어 안은 엘레이자의 손가락을 보면서, 혹여 손틈 사이에 ‘물갈퀴’가 있지 않았을까 착각마저 든다. 인어와 인간, 물과 사랑이 선사하는 ‘영화적 환상’이다.

문을 열자마자 터져 나오는 물, 창밖으로 보이는 낭만적 우중 풍경과 습기 가득한 욕실, 그리고 부활을 암시하는 엔딩.

나와 한없이 다른 것만 같은 사랑의 비밀을 ‘이해’하고 싶다면 ‘쉐이프 오브 워터’는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현재 웨이브, 시리즈온 등 OTT 플랫폼에서 상영 중.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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