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사상과 종교공부-백낙청 외 지음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린 ‘선천개벽’같은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사람과 정신과 마음에 일어나는 근본적 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대변혁을 ‘후천개벽’으로 규정하고 추진한 것은 유독 한반도에서 시작된 현상이요 사건이다.”
문학평론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 2023년 유튜브 방송을 통해 동학·천도교편, 원불교편, 기독교편으로 이어지는 개벽사상 좌담을 3치례 진행했다. 관련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19세기 밀려드는 서학(西學)에 맞서 우리 땅에서 자생적으로 일어났던 개벽사상과 개벽운동에 중점을 두고 토론했다. 신간 ‘개벽사상과 종교공부’는 3편의 좌담 녹음을 풀어서 책으로 묶은 것이다. 도올 김용옥의 ‘동경대전’(2021년) 출간을 계기로 진행했던 특별 좌담을 서두에 배치했다. ‘K사상의 세계화를 위하여’라는 부제를 붙인 이 책은 크게 ▲다시 동학을 찾아 오늘의 길을 묻다:K사상의 출발 ▲동학의 확장, 개벽의 운동 ▲원불교, 자본주의 시대의 절실하고 원만한 공부법 ▲기독교, K사상의 가능성을 모색하다 등 4부로 구성됐다.
1부(백낙청, 철학자 도올 김용옥, 동학연구자 박맹수 원광대 명예교수)는 동학을 창도(唱導)한 수운 최제우와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를 중심으로 개벽사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세 사람의 좌담은 하이데거와 화이트헤드, D.H 로런스 등 사상가들까지 동·서양을 넘나들며 폭 넓고, 깊이 있게 펼쳐진다. 도올 김용옥은 “수운은 인류 5만 년의 정신사를 융합시킨 상징체”라면서 “동학사상의 역사적 의의는 진정한 민주의 민족사적 원점을 이미 19세기 중엽에 우리 민족의 자생적인 사유에 기초하여 창출했다는데 있다”라고 밝힌다. 박맹수 교수는 “동학부터 증산교·대종교·원불교 등 땅적인 것, 민중적인 것에서부터 새로운 세계를 열려고 했던 개벽파라는 전통을 볼 수 있다”며 “개벽의 기점과 출발을 조선 땅, 한반도에서부터 시작했고 그곳을 강조한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또한 “(2016년 촛불혁명) 바탕에 흐르는 비폭력 평화정신은 동학혁명에서부터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2부(백낙청, 정지창 전 영남대 교수, 김용휘 대구대 교수)는 해월 최시형의 민중성, 동학과 원불교의 상통점·차이점, 동학을 계승한 천도교 등을 더욱 심층적으로 들여다본다. 동학에 입도했던 5대조 할아버지에 대해 뒤늦게 듣고 동학을 공부하게 된 문학평론가 정지창 교수는 “동학으로부터 우리 한국의 독창적인 사유가 시작되고 있다”면서 “해월은 민중적인 동학사상을 완성하고, 실천한 생명사상가”라고 말한다. 김용휘 교수는 1920년대 천도교청년회 중심의 문화운동은 개벽운동이라며 “인간의 근본적인 변화를 바탕으로 전개된 사회운동, 독립운동, 나아가 문명전환 운동이었다”고 평가한다.
3부(백낙청, 방길튼 원불교 안산국제교당 교무, 허석 원광대 교수)와 4부(백낙청, 여성주의 신학자 이은선 세종대 명예교수, 이정배 감신대 은퇴교수)는 원불교와 기독교에 대해 심도깊게 파고든다. 또한 일아 변선환, 해천 윤성범, 여성신학자 박순경, 신학자·목사 이신, 다석 유영모 등을 새롭게 조명한다.
토론은 ‘기후재난과 생태위기 등 직면한 과제에 K사상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로 귀결된다. 독자들은 전문가들의 고품격 좌담에 동석한 것처럼 동학·천도교, 원불교 등 ‘K사상’의 이론적·실천적 흐름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개벽사상가와 ‘K사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혁명적인 개안(開眼)을 하게 된다. 또한 동학농민혁명부터 촛불혁명에 이르는 역사적 실천의 바탕을 이루는 ‘K사상’이 “한반도가 세계에 내놓을 고유의 사상적 자산”이라는 저자들의 주장에 공감한다. <창비·2만6000원>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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